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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지방화하기 : 포스트식민 사상과 역사적 차이

Chakrabarty, Dip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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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유럽을 지방화하기: 포스트식민 사상과 역사적 차이/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 김택현, 안준범 옮김
개인저자Chakrabarty, Dipesh, 1948-
김택현, 역
안준범, 역
발행사항서울: 그린비, 2014
형태사항512 p.; 23 cm
총서명프리즘총서;15
원서명Provincializing Europe
ISBN9788976825377
일반주기 색인수록
본서는 "Provincializing Europe :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c2000."의 번역서임
주제명(지명)Europe --History --Philosophy
India --Historiography
일반주제명Historiography --Europe
Eurocentrism
Decolonization
분류기호90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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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비서구의 근대화에서 ‘미완’이 아닌 ‘고유성’을 읽는다!
유럽 중심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포스트식민 역사학의 도전!!


한때는 조국 근대화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목표였다. 그런 뒤 근대성은 인간의 다양함을 억압하는 획일성의 지배로 여겨지기도 했다. 탈근대 시대를 둘러싼 논쟁들을 지나 이제는 어느새 ‘근대성’에 대한 성찰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근대가 형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살고 생각하고 있다면, 근대성이라는 문제, 특히 한국을 포함한 비서구의 근대성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주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린비가 출간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유럽을 지방화하기: 포스트식민 사상과 역사적 차이』(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는 이런 식민지 혹은 제3세계 근대성, 넓게는 비서구의 근대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책이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이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도 ‘서발턴 연구...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비서구의 근대화에서 ‘미완’이 아닌 ‘고유성’을 읽는다!
유럽 중심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포스트식민 역사학의 도전!!


한때는 조국 근대화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목표였다. 그런 뒤 근대성은 인간의 다양함을 억압하는 획일성의 지배로 여겨지기도 했다. 탈근대 시대를 둘러싼 논쟁들을 지나 이제는 어느새 ‘근대성’에 대한 성찰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근대가 형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살고 생각하고 있다면, 근대성이라는 문제, 특히 한국을 포함한 비서구의 근대성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주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린비가 출간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유럽을 지방화하기: 포스트식민 사상과 역사적 차이』(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는 이런 식민지 혹은 제3세계 근대성, 넓게는 비서구의 근대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책이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이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도 ‘서발턴 연구 집단’(Subaltern Studies Group)의 주축 역사가 중 한 명으로, 그린비 프리즘 총서 15권으로 출간된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저작이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 서사에서 들리지 않았던 서발턴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서발턴 연구의 문제의식을 이어 가면서, 더 나아가 역사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과학 사고방식이 품고 있는 유럽 중심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주의’(historicism)를 비판하는 근본적인 작업을 시도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와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단순히 상대주의에 머물지 않고 ‘보편성’을 적극 재사유하려는 이 저작은 칼 맑스와 마르틴 하이데거 사상을 길잡이 삼아 비서구(혹은 제3세계)의 근대성을 새롭게 조망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역사 이론과 경험 연구 양자를 모두 아우르는 이 책은 이러한 이론적?방법론적 고찰에 기반을 두고 인도 근대사의 편린들을 탐구한다. 단순히 이론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차크라바르티의 이론적 역사학의 실천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묘미 중 하나이다.
2000년에 출간된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사회과학 담론 및 근대성의 본성 자체를 탈구축함으로써 역사학, 포스트식민주의, 맑스주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한국어판은 이런 반응들에 대한 차크라바르티의 응답을 담은 「2007년판 서문」을 수록하고 있다), 그 파급력은 현재까지도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손에 쥐어진 이 문제작을 통해 한국에서도 근대성을 새롭게 사유하려는 반향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봄 직하다.

역사주의를 넘어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인도의 맑스주의 노동사 전통 안에서 자신의 학문적 이력을 시작한 역사가이다. 그 결실로 출간된 책이 1989년의 『노동 계급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기: 벵골 1890~1940』(Rethinking Working-Class History: Bengal 1890~1940)이고, 그 후 인도에서 호주로, 그다음에는 미국으로 이주하는 삶의 궤적의 변화와 더불어 그의 사유도 ‘포스트식민주의’의 자장 안에서 펼쳐졌다. 그 시기 동안 그는 맑스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접합을 고민했고 2000년 출간한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차크라바르티의 이론적 위상을 확고하게 정립한 계기가 된 저작이다. 이후 그는 근대성 문제를 사유하는 작업을 이어 갔고, 2002년에는 그 사유를 집약한 『근대성의 거처들: 서발턴 연구의 연파 안에서의 에세이들』(Habitations of Modernity: Essays in the Wake of Subaltern Studies)을 펴내기도 했다.
차크라바르티에게 인도 같은 제3세계 국가의 정치적 근대성 경험과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핵심 대상은 ‘역사주의’이다. 역사주의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동질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다는 관념이며, 근대 유럽의 진보적 역사관을 대표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역사주의는 식민지에서는 유럽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역사주의에 따르면 유럽이 역사적으로 ‘먼저’ 근대화를 이룩했으므로, ‘아직’ 근대적이지 ‘않은’ 미개한 지역을 통치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차크라바르티는 식민 지배와 관련한 유럽 역사주의를 드러내기 위해 ‘먼저 유럽에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라는 표어를 제시한다. 유럽의 식민 지배자와 식민지의 피지배자 모두 이 관념을 받아들였고,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역사학에서도, 피식민국 자신의 역사학에서도 식민지의 역사는 늘 ‘미완’과 ‘결여’의 역사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제3세계의 근대성을 ‘미완’과 ‘결여’의 형상으로 보는 관점이 지금도 그곳들의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속에 들러붙어 있고, 이것이 제3세계 근대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차크라바르티가 자신의 과업의 핵심을 ‘역사주의 비판’이라 지칭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럽의 사유와 더불어 유럽을 해체하기

세계사적으로 유럽은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확립과 더불어 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역사상 유럽이 인구나 땅덩어리 면에서 ‘다수’였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근대 이후 ‘다수’, ‘보편’, ‘진리’의 자리를 점한 것은 늘 유럽이었다. 물론 기존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세계의 많은 나라가 근대화와 자본주의화를 이룬 지금, 어찌 보면 유럽은 이미 세계의 ‘한’ 지방에 불과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생겨난 관념들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며,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유럽이 보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중심의 사고관이 유럽과 비유럽 모두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고 해서 차크라바르티가 근대 유럽이 낳은 사상들을 전적으로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유럽에는 유럽의 지식이 있고 다른 곳에는 그 나름의 지식이 있다는 상대주의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도 그의 목적이 아니다. 수많은 반식민 운동이 입증하듯 유럽에 대항하는 투쟁들은 많은 경우 유럽 계몽주의의 언어(시민권, 자유, 평등 등)를 이용해 자신의 저항을 정당화했다. 차크라바르티는 이처럼 유럽이 낳은 보편주의 사상이 세계를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보편주의 사상이 비유럽 지역에 전파되었을 때 기존에 존재하던 문화와 어떻게 접합되었는지를, 역사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피하면서, 파악하는 데 있다.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 과거를 발굴하기

차크라바르티가 의존하는 이론적 자원은 칼 맑스와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상이다. ‘자본’의 구조는 보편적이기 때문에 자본 자체를 이해하고 비판한 맑스의 사상 역시 보편성을 갖는다. 하지만 자본이 자신을 강제하는 방식은 사회?문화?역사에 따라 달라지는데, 자본의 보편성이 각각의 사회에서 겪는 굴절을 파악하는 데는 맑스 식의 자본 분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차크라바르티는 맑스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사유를 더 전개하지 않았으며, 이론적?분석적 관계와 더불어 체험적?전분석적 관계도 중시한 하이데거의 사상으로 이를 보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관계가 자본에 포섭되어 있다. 과거는 자본의 전사(前史)를 이루는데, 이때 이 과거들은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과 결부되어 이해되고 평가된다(자본주의 이행 문제나 제3세계의 자본주의 성립 등이 이와 관련된 문제다). 이런 의미의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역사를 차크라바르티는 ‘역사 1’(history 1)이라 부른다. 자본주의 자체를 이해하고 지양하는 모든 사상과 운동은 이런 역사 1에 연루되기 마련이므로 역사 1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 1만 이해하는 것은 부적합한데, 왜냐하면 각각의 사회마다 ‘자본의 전사를 이루지만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차크라바르티는 이를 ‘역사 2들’(history 2s)이라 부르는데, 복수인 역사 2들이 중요한 것은 보편적이면서 필연적인 역사 1이 언제나 각 사회에서 역사 2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형되고 수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마다 서로 다른 세계-내-존재 방식들이 있으며,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식민지 혹은 제3세계 근대성을 설명하려는 기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주장이다.

“나에게 유럽을 지방화하기란, 우리가 하나를 혹은 하나의 전체를 결코 구성하지 않는, 인간 귀속의 그 불가피하게 편린적인 역사들을 성찰할 때, 유럽의 정치적 근대성의 범주들에 관한 계보학들을 어떻게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이접적인(conjoined and disjunctive) 것들로 창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말한 것에서 분명히 드러났기를 바라지만,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결코 유럽 사상을 회피하려는 기획일 수 없다. 왜냐하면 유럽 제국주의의 끝에서 보니 유럽 사상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반(反)식민적인 감사의 마음으로만 유럽 사상의 지방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500쪽)

우리의 근대성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하여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두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주로 ‘역사주의 비판’이라는 취지 아래 차크라바르티의 이론적/방법론적 성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런 방법론적 원칙에 기반해 실제 역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부에서 그는 19~20세기 인도 벵골의 상층 카스트 일부에게 시민 주체, 분석 범주로서의 상상태, 시민 사회, 가부장적 형제애, 공/사 구별, 세속적 이성, 봉급 노동 등의 주제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검토한다. 이 주제들 자체는 정치적 근대성을 탐구하는 데서 보편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상층 카스트들이 이 보편적 주제들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가 아니라 “유럽의 사유로부터 우리가 배운 범주들과 전략들이 비유럽적 근대성의 이 특수한 사례를 재현함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 것인지를”(76쪽) 세밀한 경험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논증하는 것이다.
그는 심층적인 역사적 사례들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 계급인 벵골 중간 계급 남성의 역사 자료를 이용한다. ‘서발턴’ 연구자인 그가 ‘중간 계급’의 역사를 서술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한 방법론적 선택이었다고 차크라바르티는 설명한다. 그는 2부에서 단순히 벵골 중간 계급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생겨난 보편적인 관념들이 벵골에 옮겨 왔을 때 이 계급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번역’(translation)되었는지를(역사주의적 시간관에 따른 ‘이행’transition이 아니라) 연구함으로써 이 중간 계급 역사의 ‘특이성’(singularity)을 서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와 문화 등의 세부 사항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차크라바르티가 자신의 출신 계급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며, 다른 계급이나 성에 대해서는 그의 방법론에 자극받은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맑스와 하이데거를 접목하는 것, 그 어떤 보편적인 사상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단선적인 역사주의에서 탈피해야 사회와 역사를 실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두는 사실 이미 여러 다른 철학자들이 정교하게 세공해 놓은 바 있는 주제이다. 그렇기에 전문 철학자가 아닌 역사가인 차크라바르티의 시도가 다소 거칠고 진부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발턴 연구라는, 더 넓게는 역사학이라는 지평에서 그 시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그런 정교한 철학들에 생생함과 현실성을 부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단순히 외부에서 생산된 이론을 역사 연구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연구 와중에 스스로 이론을 생산하는 이론적 역사를 실천하는 이 책은 역으로 맑스주의나 포스트식민주의 등의 이론적 문맥에 개입해 그 이론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 유의미한 기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근대라는 시대에 속해 있는지 여부는 논란거리지만, 근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크라바르티의 연구 대상은 인도 벵골의 중간 계급이라는 아주 작은 집단이며 그들의 경험은 분명 한국에 있는 우리 다수의 경험과 매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시간과 근대성을 바라보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은 우리의 근대성(한국의 근대성 역시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미완’과 ‘결여’의 형상으로 이해되고 있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며, 또 그의 귀중한 시도를 그렇게 우리의 현실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야말로 차크라바르티의 이 책이 낳을 수 있는 최고의 반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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