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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어디인가 : 청나라 황제의 강남 지식인 길들이기

양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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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강남은 어디인가: 청나라 황제의 강남 지식인 길들이기/ 양녠췬 지음 ; 명청문화연구회 옮김
개인저자양념군= 楊念群, 1964-
단체저자명명청문화연구회
발행사항파주: 글항아리, 2015
형태사항803 p.: 삽화; 23 cm
원서명何处是"江南"? :清朝正统观的确立与士林精神世界的变异
ISBN9788967352752
일반주기 색인수록
명청문화연구회: 박계화, 이민숙, 이영섭, 정민경, 채미현, 홍영림
본서는 "何处是"江南"? : 清朝正统观的确立与士林精神世界的变异. c2010."의 번역서임
주제명(지명)China --Intellectual life --1644-1912
China --Politics and government --History
China --History --Qing dynasty, 1644-1912
일반주제명Intellectuals --China
분류기호951.03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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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한족 중심의 중국사 다시쓰기에 찬물을 끼얹는
작금의 중국 지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저작!
도통道統을 둘러싸고 맞붙은 청 황제와 강남 사인들의 암투
방대한 지방지와 개인 문집을 동원한 미시적인 분석
왕조 교체 형극을 짊어진 지식인들은 어떤 길을 걸어갔나?


“지식인(士)의 신분과 사상은 늘 정치와 뗄 수 없는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긴장감 때문에 정치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상을 초월하지는 못했다. 특히 청나라 때 이런 긴장감은 끊임없이 왕권에 의해 소멸되었는데, 이 점에서 서방 역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최근 들어 청말에 이미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이 출현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모두 청 이후의 사 계층이 정치적으로 당했던 잔혹한 운명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_ 저자 후기

“이스라엘 사회학자 아이젠슈타트는 일찍이 서양과 중국의 정치체제를 비교하면서 중국의 통치자들은 ‘문화적’ 취향과 목표에 집중한다고 했다. 이것은 ‘집체-행정’ 혹은 ‘경제-사회’적 취향과 목표를 가진 정권과는 다르다. 중화제국의 문화적 취향과 목표는 정치 전략...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한족 중심의 중국사 다시쓰기에 찬물을 끼얹는
작금의 중국 지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저작!
도통道統을 둘러싸고 맞붙은 청 황제와 강남 사인들의 암투
방대한 지방지와 개인 문집을 동원한 미시적인 분석
왕조 교체 형극을 짊어진 지식인들은 어떤 길을 걸어갔나?


“지식인(士)의 신분과 사상은 늘 정치와 뗄 수 없는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긴장감 때문에 정치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상을 초월하지는 못했다. 특히 청나라 때 이런 긴장감은 끊임없이 왕권에 의해 소멸되었는데, 이 점에서 서방 역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최근 들어 청말에 이미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이 출현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모두 청 이후의 사 계층이 정치적으로 당했던 잔혹한 운명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_ 저자 후기

“이스라엘 사회학자 아이젠슈타트는 일찍이 서양과 중국의 정치체제를 비교하면서 중국의 통치자들은 ‘문화적’ 취향과 목표에 집중한다고 했다. 이것은 ‘집체-행정’ 혹은 ‘경제-사회’적 취향과 목표를 가진 정권과는 다르다. 중화제국의 문화적 취향과 목표는 정치 전략의 실천과정에서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 통치자들이 특정 문화전통, 문화질서, 문화양식의 유지를 특별히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기본적 틀이기 때문에 모든 정치적 목표는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 _ 결론

[책소개]

‘강남江南’은 어디인가. 얼핏 이 제목은 이 책이 명청대 문화를 주도했던 중국 강남 지역, 즉 창장長江 강 이남의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일반인들의 인상 속에 박힌 지리적 개념의 ‘강남’이 아니라, 강남 사인士人과 청초 제왕들이 각자 생각하는 상상 속의 ‘강남’의 이미지이며, 그것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정통성과 합법성의 근거를 마련해줄 ‘강남’ 사대부 전통의 핵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이 책은 청 왕조의 ‘정통관正統觀’ 수립의 복잡한 배경과 내용을 탐색하면서 ‘도통道統’의 담지자였던 강남 사인들이 청나라 황제와 도통의 주도권 쟁탈과정에서 어떻게 ‘대일통大一統’의 협조자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한 연구서다.
2010년에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현재 중국 런민대 청사연구소 부소장이자 박사지도교수인 양녠췬 교수다. 그의 증조부는 중국 근대의 유명한 정치가인 양두楊度(1875~1932)이며 외증조부는 유명한 사상가이자 학자인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다. 근대 중국의 정치와 사상에 큰 족적을 남겼던 두 사람의 후예로서 그는 처음에 중국 근대 사회사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유학의 지역적 분포와 근대 지식집단의 변천儒學的地域分布與近代知識群體演變』이라는 제목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저자는 중국의 ‘사士’ 계층이, 그들이 굳건하게 지키려 했던 가치관이 어떻게 현실에서 해체되고 개조되고 재편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고찰해왔다. 특히 이 책에서는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사인들의 몸부림과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운명에 방점을 찍는다. 명청교체기와 청나라 초중기를 배경으로 하여 그간 연구되어온 사회사와 신문화사의 여러 명제를 관찰한 뒤 ‘사인’과 황권 간의 복잡한 대립관계를 재구성하여 보여줌으로써 현대 지식인과 국가 정권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현재의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강남’이란 무엇이고, 왜 ‘강남’이 문제인가

이 책에서 가리키는 ‘하나의 장소’는 물론 ‘강남’ 지역(양쯔 강 이남의 장쑤·저장·안후이 성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강남’은 일반인의 인식 속에 박힌 지리적 개념의 강남이 아니라, 사인과 제왕들이 각자 생각하는 상상 속의 강남 이미지다. 남송 이전까지 역대의 제왕들은 ‘중원 쟁탈’을 목표로 삼았고, 이를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았다. 이 같은 사상의 지배 아래 공간적 영토를 얼마나 가지느냐에 따라서 통치의 합법성이 결정됐다. 남송 이후 사인과 제왕들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했다. 영토를 확장하려면 반드시 ‘도道’를 이해하고 준수해야 했다. 무력 침탈에는 문화 제약이라는 족쇄가 덧씌워졌고, 이로부터 ‘강남’의 특수한 의미는 두드러졌다. 사실 중국 고대사에서 북방 ‘중원’이 지녔던 우아함과 질박함은 화하 문명의 발원지로서의 풍모와 함께 오랑캐의 침범으로 오염됐다. 그래서 어떻게든 강남의 수려한 경치와 연결시켜 한족의 문명을 고수한다는 이미지를 가져야 했다. 북풍北風이 남쪽에 흘러들어가 반드시 ‘강남’의 화려한 문풍을 받아들여야만 야만의 기운을 다 씻어낼 수 있다. 청나라의 황제들이 중원의 주인이 된 뒤 늘 직면했던 문제는 바로 강남의 이미지였다. ‘대일통大一統’의 진의는 쟁탈이라는 두 글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쟁탈은 모든 제국의 건립과정에서 필요한 물적 토대이자, 중원을 차지하는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봐야 한다. 강남을 직면했을 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덕적 승계’와 ‘영토 확장’ 간의 관계를 어떻게 깔끔하게 설명할 것인가. 이를 이민족 제왕들의 정통성의 문제로, 영토 확장과 복종을 단순한 무력 자랑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결국 ‘회유懷柔’라는 밑그림을 그리게 됐고, 이 밑그림은 강남의 사대부 전통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강남이라는 ‘장소’는 토론해야 할 화두가 됐다.

명말청초라는 중층 구조-정치에서 심리까지

명말 유민들의 비정상적 행위는 왕조의 교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만주족에 대한 반역행위로 보이지만, 사실은 시대의 단절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자기반성적 입장에서 보면 이 행위는 자신이 속한 명말 문화에 대한 자기 검토와 비판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태도는 청나라 사람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질박質朴’한 북방의 생활태도와 일부 합치된다. 청초淸初의 제왕들이 근검, 붕당의 폐해, 예의 중요성을 들어 명대 문화를 비판할 때 명말 유민들 역시 ‘문질文質’ 관계, 강학의 폐해, 예의의 재건 등을 통해 명대 문화를 비판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적대적인 쌍방이 잠재적인 동맹 관계로 변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만주족 침입에 대한 청초 사인들의 적대적 태도와 명나라 문화를 거부하는 반성적 태도는 기묘하게 상쇄되고, 이로부터 청 정권 자체의 합법성에 대한 비판적 태도도 약화됐다.
이민족에 대한 반항과 명대 문화에 대한 반성이라는 두 가지 임무가 청초의 특수한 환경과 겹치면서 청의 제왕들은 ‘도통道統’의 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얻었다. 이런 저항적 자세와 사치를 반대하는 ‘질박’한 풍조가 결합된 뒤, 질박함을 생활 규범으로 삼았던 만주족은 한족 사인들의 전통적 가치관에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명대 문화에 대한 반성적 태도는 공교롭게도 만주족 문화가 우뚝 설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여기에는 명대 문화의 언론과 행동을 반대하는 주장, 예컨대 ‘반강학反講學’ ‘반결사反集社’ ‘반당쟁反黨爭’ ‘반심학反心學’ 등과 불교로의 귀의, 은거, 방랑 등의 각종 괴이한 방식이 정신적 해탈의 추구를 포기한다는 측면에서 도리어 새로운 제왕들의 통치를 인정하는 공모행위로 변질될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의 공모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남송南宋-명말明末’의 은유적 연관성은 공간적 분할에서 시작되고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남송의 주희는 ‘도통道統’과 ‘도학道學’을 상층교화와 하층교화의 측면으로 나누어 이야기했고, 명대의 왕양명은 ‘사회’적 측면에서 교화 원리를 제시했지만, 제왕들의 ‘관심觀心’도 매우 중시해 이것을 수신修身의 필요조건으로 삼았다.

덫에 걸린 지식인들--윤리적 곤혹과 논리적 모순

하지만 남명南明-청초淸初의 대치정권에 놓여 있던 사인들의 사상적 논리는 더욱 복잡해 보였다. ‘문文에서 질質로’는 명말 청초의 사인이 ‘출사와 은거出處’ 사이에서 선택할 때 처했던 윤리적 어려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들의 괴벽한 언어와 행동은 왕조 교체기에 당했던 참혹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과거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부끄러워하며, ‘황폐해진 산수(잔산잉수殘山剩水)’를 회복시키고 기층으로부터의 ‘예’를 회복하는 일에 높은 열정을 갖게 됐다. 이는 명대 양명학이 남긴 ‘사회화社會化’의 노선을 따르면서 야만족의 남침을 막으려는 목표와도 관계가 있다. 강학에서 빠져나오고, 사치를 억제하고, 도시문명을 반대하고, 시골의 순수함을 노래하고, 삼대를 제창하는 것, 그리고 여론에서 성행한 ‘문에서 질로의 회귀’ 주장 등은 이런 시대적 배경과 뗄 수 없다.
동시에 이것은 당시 사인들로 하여금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했다. 즉 명말 사조에 대한 규탄과 반대는 사인들의 정신적 기상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데, 예를 들어 사인들에게 ‘제세濟世’와 ‘경세經世’ 등의 실용적 기능을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인의 풍격을 세속의 평범한 가치관과 동일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나아가 정신세계는 점차 평범해지고 ‘문文에서 질質로’라는 구호 아래 청초 제왕들이 주장했던 질박한 풍격의 북방 이념과 일치되어갔다. 양자 간의 무의식적인 합류로 인해 제왕들은 보이지 않게 사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게 됐는데, 이는 명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연회강經筵會講’ 중에 사인과 제왕은 각자가 이해한 경전에 대해 반복적으로 토론하고 제어하면서 서로 역할이 바뀌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상질尙質’을 핵심으로 한 청초 사인들의 재건 노력이 청초 통치자들의 정책과 의외로 일치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조정에서의 경전 해독은 갈수록 제왕들의 현실적 목표에 굴복하게 된 반면, 남송 이래의 사인들이 강조했던 초월적 정신은 결핍되어갔다. 제왕들의 경전 해석에 대한 점유와 권위적인 지배방식은 결국 사인들을 ‘치통治統’의 노예로 만들었다.

이 책의 학문적 의의

이 책에서 다루는 큰 주제는 ‘정통성’의 문제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심세審勢」(『연암집燕巖集』 권14)를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중원의 사람들은, 강희제 이전엔 모두가 명나라의 유민이었으나 강희제 이후로는 청 왕조의 신민이 되었다中州之人士, 康熙以前皆皇明之遺黎也, 康熙以後, 卽淸室之臣庶也.”

이 표현은 연암 박지원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대한 조선 선비의 망령된 다섯 가지 착각을 설명하면서 나온 것인데, 간단한 지적 같지만 상당히 상징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좀 거칠게 말하자면 양녠췬의 이 책, 『강남은 어디인가』는 박지원의 이러한 언명言明의 구체적인 논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옹정제 시기를 중심으로 전후 강희제와 건륭제 시기까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한 변화의 고찰을 통해 오랑캐로 간주되던 만주족의 청 왕조가 어떻게 한족에게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송대宋代 이래로 엄격한 화이론華夷論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한족漢族 지식인들이 어떻게 길들여지고 포섭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청대 역사와 사상을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틀은, 만주족이 비록 중국을 침략해 점거했지만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보니 점차 우수한 한족 문화에 흡수되어 결국 ‘한화’되고 말았고, 한족 사인은 문자옥文字獄과 같은 만주족의 무자비한 정치적 탄압을 피해 비정치적인 문헌고증학에 함몰되고 말았다는, 매우 낯익으면서 낡은 통설이다.
이러한 중화중심주의적인 중국발 통설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으로 등장한 것이 미국의 중국학계를 중심으로 하는 신청사New Ching History 학파다. 그들은 만주족의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적 실체를 강조하기 위해, 중화중심주의적인 각도로 쓰인 한문 자료보다 청나라 연구의 시야를 청나라가 새로 개척한 중앙아시아까지 확대하고 만주족의 독자적인 색채가 확연한 만문滿文 자료를 적극 활용한다. 이 같은 탈중화중심주의적인 접근에 당연히 중국 주류 학계는 크게 반발했고, 결국 양자 간에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같은 대립 구도에서 양녠췬의 『강남은 어디인가』는 새로운 연구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한문 자료를 근거로 한족 중심의 지역과 역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분명 중국 주류학계의 것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청 왕조의 안정이 주도적이면서 면밀했던 계획에 의해 실현된 것임을 논증하고, 이에 대한 한족 지식인들의 심리적 변화와 사회적인 변모를 생동감 있게 묘사해낸 것은 분명 기존의 낡은 틀을 타파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적만 했을 뿐 직접 시연해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청나라를 ‘만주 제국’으로 간주하고 한족의 중국을 그 일부로 치부해 최대한 만주족을 돋보이게 하고 한족의 역할을 희석하고자 한 신청사 학파의 접근방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책에서는 당시의 주요 개념들, 예컨대 ‘잔산잉수殘山剩水’ ‘문질지변文質之辨’ ‘화이지변華夷之辨’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위잉스余英時 등이 즐겨 쓰는 관념사적인 접근방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살펴진다. 그리고 그 논증에 있어서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측면과 그 변천을 천착해 들어가는 방식은 어느 정도 아날학파의 미시사적인 방식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양녠췬의 방대하면서 집요한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청대사, 더 나아가 중국의 역사를 분석할 새로운 연구 틀framework의 구축이다. 이는 양녠췬의 주요 저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서양 역사학의 용어를 빌려 중국 역사를 기술하는 것의 한계를 인식하고 중국 전통 속에서 개념을 끌어내 해석하려는 노력도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이다.
중국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 틀의 구축’이란 말은 쉬워도 그 실천은 지난한 것이다. 기존 틀의 타파를 시도하면서, 그 틀이 축적해온 구심력에 속한 수많은 도전과 반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녠췬의 저작들은 대부분 논쟁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었고 실제로 적지 않은 논쟁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남은 어디인가』가 가장 많은 논쟁거리를 촉발한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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