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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잡지 : 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성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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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서화잡지: 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성해응 지음 ; 손혜리, 지금완 옮김
개인저자성해응= 成海應, 1760-1839
손혜리, 역
지금완, 역
발행사항서울: 휴머니스트, 2016
형태사항259 p.: 천연색삽화; 22 cm
기타표제한자서명: 書畵雜誌
ISBN9788958623168
일반주기 권말에 원문 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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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서화잡지는 18세기 조선의 검서관인 성해응이 뛰어난 서화가나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인상 비평을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남긴 감상집이다. 그는 서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신라시대부터 18세기 조선 중국 일본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화작품을 섭렵했으며, 여기에는 편지와 서첩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귀중본도 포함되어 있다. 서화가에 대한 정보, 시문과 화풍의 특색, 서화와 관련된 일화 등을 간략하고도 적실하게 기록했으며, 문사에 대한 기록 중 자신의 견해와 다르거나 오류가 있으면 다양한 자료와 전거를 활용하여 작품의 진위 여부를 규명하고 고증했다. 성해응이 뛰어난 심미안으로 선별한 서화 작품에 대한 110제의 제발은 18세기 조선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향유된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 조선 최고 심미안의 소유자 성해응, 그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검서관 출신 문인이 엄선한 당대 최고의 서화들, 《서화잡지》

옛사람들은 해서·전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글씨를 쓰고 이를 가보로 물려주며 대를 이어 감상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도 맘에 드는 한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서화잡지는 18세기 조선의 검서관인 성해응이 뛰어난 서화가나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인상 비평을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남긴 감상집이다. 그는 서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신라시대부터 18세기 조선 중국 일본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화작품을 섭렵했으며, 여기에는 편지와 서첩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귀중본도 포함되어 있다. 서화가에 대한 정보, 시문과 화풍의 특색, 서화와 관련된 일화 등을 간략하고도 적실하게 기록했으며, 문사에 대한 기록 중 자신의 견해와 다르거나 오류가 있으면 다양한 자료와 전거를 활용하여 작품의 진위 여부를 규명하고 고증했다. 성해응이 뛰어난 심미안으로 선별한 서화 작품에 대한 110제의 제발은 18세기 조선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향유된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 조선 최고 심미안의 소유자 성해응, 그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검서관 출신 문인이 엄선한 당대 최고의 서화들, 《서화잡지》

옛사람들은 해서·전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글씨를 쓰고 이를 가보로 물려주며 대를 이어 감상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도 맘에 드는 한 구절의 글을 손 글씨로 정성들여 쓰고 그림을 곁들이는 ‘캘리그래피’가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니, 잘 쓴 글씨에는 시대를 넘어선 특별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지식인들의 삶과 지향이 녹아든 18세기 산문 문학을 엄선하여 엮은 ‘18세기 지식 총서’의 아홉 번째 책 《서화잡지-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에서는 서화(書畵) 취미에 몰두된 한 사람을 소개한다.
서화에 대한 감상과 평 110제(題)를 담은 《서화잡지(書畵雜誌)》는 조선의 검서관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이 몰두했던 취미 활동의 전모를 보여준다. 《서화잡지》는 성해응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속집 책16에 수록된 제발(題跋)만을 모은 것으로, 그가 평생 수집하며 감상한 작품과 서화가들에 대해 남긴 기록들이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대표 서화가와 작품 들에 대한 인상 비평을 중심으로, 서화에 대한 한 사람의 관심과 취향, 심미안 및 작품에 얽힌 흥미롭고도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성해응은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중앙에 진출한 인재였다. 그는 규장각에 소장된 수많은 국내외 진귀한 서적을 접했고, 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밀접하게 교유했다. 그의 집안은 3대째 통신사행에 참여할 정도로 문학적 역량을 공인받았던 서족 명문가인데, 성해응은 나열·이한진·김상숙 등 이름난 예술인들과 깊이 교유했던 부친 성대중과 함께 예술 모임에 자주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서화에 대한 높은 식견과 심미안을 지니게 되었다. 《서화잡지》는 조선과 중국 및 일본, 그리고 신라시대의 김생(金生)부터 18세기에 활동한 서화가에 이르기까지 성해응이 엄선한 수많은 서화 작품을 망라하며, 여기에는 편지와 서첩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귀중본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서화에 대한 제발 27제, 일본 서화 제발 3제, 조선과 관련한 제발 80제로, 총 110제의 제발 중 ‘글씨[書]’에 대한 기록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의 서화에 심취했던 여느 학자들의 제발문학과 달리 정선·김홍도·최북·강세황·나열·김상숙·이인문 등 성해응과 동시대에 활동한 18세기 대표 서화가와 서화 작품에 대한 제발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서화잡지》는 18세기 조선의 화단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향유된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 서화에 매료된 18세기 지식인들
-18세기 조선 화단과 제발(題跋) 문학의 풍경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들이 서화를 감상하고 소장하는 취미는 고려시대에 형성된 이후 점차 확산되어,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도시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었던 영·정조 시대에 보편화되었다. 서화를 감상·소장하는 취미에서 더 나아가 이를 문학으로 기록하는 제발(題跋)문학도 활발하게 창작되기 시작했다. 서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이용휴와 중국의 서화 이론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서유구, 강세황·이영유·남공철 등은 제발문학의 꽃을 피운 주역들이었다. 이들이 대부분 중국의 서화에 대해 경도되어 있다면 성해응의 《서화잡지》는 당대 조선의 뛰어난 서화가나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상 비평을 짧은 분량 안에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남겼는데, 20~50자 이내의 짧은 분량 안에 서화가에 대한 정보, 시문과 화풍의 특색, 서화와 관련된 일화 등을 간략하고도 적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화 작품의 중요한 특징과 배경, 나아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화가나 주변 사실을 생생하게 그려 조선 후기 서화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단원 화사(檀園畵師)의 〈화조도(花鳥圖)〉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 번에 붓을 휘두른 것으로 그다지 유념해서 그린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빼어난 기운이 끊임없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듯하니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화폭마다 모두 선친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으니, 자손 된 입장에서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해서 잃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단원 김홍도의 8폭 병풍〉(118쪽 중에서)

내가 우의정 이태좌(李台佐,이광사)의 비문을 본 일이 있는데 아주 훌륭하여 한·당 시대의 여러 비석에 견주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일찍이 그는 상자에 가득한 글씨를 첩에게 주어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원교가 약산도(藥山島)에서 죽자, 그 첩이 글씨를 판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다투어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마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남쪽 사람들 중에 그의 서법을 모방한 이가 가장 많았다.
-〈원교 이광사의 필적〉(196쪽 중에서)

성해응은 서화에 대한 기록 중 오류가 있으면 다양한 자료를 확인하고 증거를 원용하여 고증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이라고 전해지는 신우비가 여러 자료를 근거로 위작임을 주장하기도 하고, 송나라 주요 학자들의 글에 제발을 더한 〈경현첩〉의 필법을 확인하여 그 글씨가 동기창의 것이 아님을 완곡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부친 성대중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온 기무라 겐카도의 〈겸가아집도〉나 사와도 토코의 〈다호비〉 탁본 등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 내력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은 무엇보다 한·중·일을 아우른 서화가와 서화에 대한 성해응의 남다른 식견과 감식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정림(顧亭林)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이전에는 이런 비가 보이지 않는다. 하자일(何子一)이 축융봉(祝融峯) 아래에서 처음 발견하여 손수 모각해서 전한 후에 형산 수령이 찾아보았지만 이미 그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우비라고 말하는 것은 글자가 기이하여 서법에 맞지 않고 문장이 이상하여 조리가 없으며 운자가 이상하여 옛 법에 맞지 않으니, 위작으로 판단된다.”
이 두 사람의 의견을 살펴보면 지금 전해지는 신우비는 바로 하자일이 판각한 본이다.
낭선군(朗善君)이 연경(燕京)에 갔다가 비문 탁본을 얻었는데 그내용 가운데 ‘승제왈차, 익보좌경(承帝曰嗟 翼輔佐卿)’ 등의 구절이 있으니, 바로 이런 부분이 고염무가 말한 조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다. 요순 시절에 어찌 ‘경(卿)’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겠는가.
다른 것들도 모두 이와 같이 유추해볼 수 있다.
-〈신우비〉(29쪽 중에서)

〈경현첩(景賢帖)〉은 염계(濂溪)·명도(明道)·이천(伊川)·횡거(橫渠)·회암(晦菴) 다섯 선생의 화상(畵像)으로 이루어졌다. 왼쪽에 다섯 선생에 대한 찬(贊)을 자세히 썼고, 하단은 바로 한음(漢陰) 이상국(李相國)의 글씨이다. 찬은 누가 쓴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현재(玄宰) 동기창(董其昌)의 글씨라고 하는데, 현재의 필법은 수려하고 자연스러우니 어떻게 이처럼 장중한 글씨가 그의 글씨라 할 수 있겠는가.
-〈경현첩〉(57쪽 중에서)

《서화잡지》는 본격적인 비평서라기보다 서화에 대한 취와 식견을 지닌 한 지식인의 서화 감상에 대한 단편 기록에 가깝지만, 서화가들의 특성과 작품의 장단점에 대한 정확한 서술은 서화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선사할 것이다. 《서화잡지-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는 성해응의 서화 취미와 감상 및 비평에서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인 《서화잡지》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풀어냈으며,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친절한 정보를 주석으로 달았다. 제발에서 저자가 언급하였으나 소실되거나 수록할 수 없는 작품의 경우 같은 작가의 유사한 작품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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