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탑메뉴

전체메뉴

전체메뉴닫기


검색

상세정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

상세정보
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 정영환 지음 ; 임경화 옮김 ; 박노자 해제
개인저자정영환= 鄭榮桓, 1980-
임경화= 林慶花, 1971-, 역
박노자= 朴露子, 1973-, 해제
발행사항서울 : 푸른역사, 2016
형태사항278 p. ; 23 cm
대등표제'Reconciliation' for whom? : comfort women of the Empire as invented history
원서명忘却のための和解 :<帝國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
ISBN9791156120773
일반주기 본서는 "忘却のための和解 : <帝國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 2016."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266-273)과 색인수록
주제명(개인명)박유하=朴裕河, 1957- 제국의 위안부.SLSH
분류기호940.5405082
언어한국어

소장정보

서비스 이용안내
  • 서가에 없는 자료서가에 없는 자료
  • SMS발송SMS발송
메세지가 없습니다
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자료실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1 1274786 951.6 박67ㅈ정 K 3관4층 일반도서 대출중 2020-10-27 예약
SMS발송
2 1274785 951.6 박67ㅈ정 K 3관4층 일반도서 대출중 2016-12-05
SMS발송


서평 (0 건)

서평추가

서평추가
별점
별0점
  • 별5점
  • 별4.5점
  • 별4점
  • 별3.5점
  • 별3점
  • 별2.5점
  • 별2점
  • 별1.5점
  • 별1점
  • 별0.5점
  • 별0점
제목입력
본문입력

*주제와 무관한 내용의 서평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일본은 《제국의 위안부》를 상찬하는가

《제국의 위안부》와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전면적.종합적 비판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일본어판 원서 《망각을 위한 ‘화해’: 《제국의 위안부》와 일본의 책임忘却のための〈和解〉─《帝國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世織書房, 2016))은 박유하(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2013)과 그를 둘러싼 사태에 대한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비판서다. 저자 정영환鄭榮桓(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 대학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은, 단순히 박유하의 입장에 대한 표면적인 반박에 머무르지 않고 한일 양국에서 벌어진 ‘《제국의 위안부》 사태’의 본질과 이 사태의 역사적.사상적.정치적 기원에 대한 총체적 분석의 형태를 띤다. 정영환은 이 저서에서 엄격한 실증적 방식으로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점과 그 배경을 검증하여,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왜곡, 전유하고 악용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후보상’의 진...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일본은 《제국의 위안부》를 상찬하는가

《제국의 위안부》와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전면적.종합적 비판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일본어판 원서 《망각을 위한 ‘화해’: 《제국의 위안부》와 일본의 책임忘却のための〈和解〉─《帝國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世織書房, 2016))은 박유하(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2013)과 그를 둘러싼 사태에 대한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비판서다. 저자 정영환鄭榮桓(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 대학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은, 단순히 박유하의 입장에 대한 표면적인 반박에 머무르지 않고 한일 양국에서 벌어진 ‘《제국의 위안부》 사태’의 본질과 이 사태의 역사적.사상적.정치적 기원에 대한 총체적 분석의 형태를 띤다. 정영환은 이 저서에서 엄격한 실증적 방식으로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점과 그 배경을 검증하여,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왜곡, 전유하고 악용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후보상’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과대평가하는 등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정영환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제시된 전거를 하나하나 꼼꼼히 검증하면서, 박유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일본군의 ‘동지’이자 ‘대일제국의 애국자’로 둔갑시키기 위해서 자료들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매우 상세하게 규명하며, 동시에 박유하가 만들어낸 ‘전후 사과와 보상’의 이미지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방대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확인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특히 일본 언론계가 《제국의 위안부》를 높이 평가하는 배경을 예리하게 고찰.비판함으로써 일본 사회의 지적.도덕적 퇴락, 즉 과거의 체제 비판자들이 보수적 ‘국민주의’ 주류로 점차 합류해가는 작금의 우려스러운 상황에 경종을 울린다.

《제국의 위안부》상찬의 배후: 일본 언론의 ‘화해’론 띄우기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그것은 전체적인 검증이 뒷받침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텍스트를 비교분석하고, 텍스트에 인용된 출전을 전부 검증하고, 선행 연구를 참고해서 저서의 연구사적 위치를 확정하는 등의 대단히 고된 작업을 통해 《제국의 위안부》가 결함투성이의 저서임을 입증한다. 그뿐 아니라, 자료들의 조사나 독해, 적절하고 신중한 논증을 모두 희생시키면서까지 저자가 표명하고자 한 정치적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즉 적절한 검증 절차 없이 ‘보수’와 ‘리버럴’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이 책이 이토록 절찬받는 데에는, 박유하가 제시한 ‘위안부’ 이미지가 일본사회가 바라는 이미지와 합치한 점, 그리고 지난 수년간 일본의 미디어가 불러일으킨 붐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해’론이 있었다. ‘화해’론은 가해자들은 충분히 사죄와 보상을 했으니 피해자들이나 지원 단체 쪽이 어느 정도 양보하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서는 이 절찬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사태를 전면적으로 검증한다. 제1장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제2장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일본의 책임〉, 제3장 〈왜곡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서는 주로 조선인 ‘위안부’의 본질로 제시된 ‘제국의 위안부’론을 철저히 검증한다. 제4장 〈한일회담과 근거 없는 ‘보상.;배상’론〉과 제5장 〈고노 담화와 국민기금 그리고 식민지 지배 책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둘러싼 박유하의 주장에 대한 검증이다. 제6장 〈맺음말: 망각을 위한 ‘화해’에 저항하며〉에서는 망각을 위한 ‘화해’를 촉구하는 일본사회의 지적 상황에 경종을 울린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의 노골적인 역사수정주의 흐름과 관련해서 책의 의의를 살핀 박노자의 해제 〈역사수정주의, 혹은 현재의 합리화로서의 ‘역사’〉, 책의 번역 과정과 저자 정영환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를 담은 역자 임경화의 〈역자 후기〉가 새롭게 추가되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조선인 ‘위안부’는 일제에 애국한 일본군의 동지
박유하는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갈등의 중심에 있는 것은 ‘위안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하고, ‘일본군에 강제연행된 순진무구한 조선인 소녀들’이라는 ‘위안부’ 이미지는 지원단체 등에 의해 왜곡된 것이지, 있는 그대로의 기억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왜곡된 이미지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박유하가 제시한 것이 ‘제국의 위안부’론이다. 이것은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과 일본군과의 관계에서 동일한 위치에 있으며, 전쟁 수행에 협력하는 ‘애국’적 존재로,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고 스스로도 ‘동지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해방 후에는 ‘식민지의 후유증’ 때문에 스스로 ‘제국의 위안부’였던 기억을 은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영환은 이 주장이 사료의 오독, 증언의 자의적 해석과 취사선택, 연구 성과에 대한 잘못된 이해 등에 의해 도출된 억측에 지나지 않음을 명확히 밝힌다.

박유하가 귀 기울인 것은 ‘병사들의 목소리’
더욱이 ‘제3의 목소리’ 등으로 명명하며 마치 ‘위안부’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나 새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포장된 ‘제국의 위안부’론은 1980년대 이전에 ‘병사들의 목소리’로 구축되었던 ‘사랑’, ‘위안’, ‘운명’, ‘애국’, ‘동지’ 등의 키워드를 가진 ‘위안부’ 인식으로의 회귀다. 이러한 ‘병사들의 목소리’는 1990년대 이후 아시아 피해 여성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구조적인 성폭력 시스템으로서의 ‘위안부’ 제도가 규명되면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박유하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배후의 지원 단체들에 의해 왜곡된 목소리일 뿐,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는 아니라고 하면서 피해자들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듯한 어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상은 과거의 ‘병사들의 목소리’를 복권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했음을 밝힌다.

박유하는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했는가
박유하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한 것처럼 속임수를 쓴다. 박유하는 우선 ‘위안부’ 문제의 책임부정론을 ‘자발적인 매춘부’론에 한정하고 이것을 비판한다. 그러나 하타 이쿠이코를 대표 논자로 하는 현재의 일본군 책임부정론은 역사수정주의의 비판 대상에서 제외한다. 물론 아직까지 ‘자발적인 매춘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연구의 진전과 정부 견해의 수정으로 인해 ‘군의 관여’를 부정하는 ‘자발적 매춘부’론만으로는 주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부정론자들은, 그 초점을 ‘군의 관여’에서 ‘공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의 유무’로 이동시킨 ‘일본군 무죄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안소=전투지 공창시설론, 군의 ‘좋은 관여’, 성노예 부정, 업자 주범설에 입각한 국가나 군의 책임 부정, 강제연행 부정 등을 핵심 주장으로 하고 있는 ‘일본군 무죄론’은 박유하의 ‘위안부’ 제도 이해와 일치한다. 더욱이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의 책임을 ‘발상’, ‘수요’, ‘묵인’에만 한정한다. 이는 오히려 군의 책임을 개개의 병사나 업자에게 전가하는 책임 해제의 논리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국가의 책임을 극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의 페미니스트들이 《제국의 위안부》를 평가하는 이유
이와 같이, 박유하가 이해하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일본군 무죄론’과 동일한 것이며 《제국의 위안부》는 ‘병사들의 목소리’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반페미니즘 저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이 책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박유하가 우에노 지즈코의 레토릭을 차용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박유하는 우에노 논문을 출전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소녀’나 ‘성노예’에 대한 박유하의 주장은 우에노의 ‘모델 피해자’ 이미지 비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위안부’ 피해자 중에 소녀는 소수이자 예외적인 존재인데도 소녀상으로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피해의식을 키우고 매춘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성노예’ 패러다임이 ‘연행 당시 소녀였고 완전히 속거나 폭력에 의해 납치되어 도망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저지당했다’는 ‘모델 피해자’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우에노의 주장과 유사하다.
하지만 신고된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20세 이하이며, 소녀상도 미성년자 징집이 많았던 사실의 반영이지 순결주의를 투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유하가 이러한 오류를 범한 것은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를 동일한 위치로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매춘 전력이 없는 미성년 징집은, ‘추업’에 종사하며 성병 없는 만21세 이상으로 징집을 한정한 일본 ‘내지’와는 다른 식민지 지배 하의 조선인 ‘위안부’ 징집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본래 일본 정부의 ‘순결주의’의 배후에 있는 식민지주의와 여성 차별이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우에노=박유하는 이것을 연구자나 지원 단체의 매춘 차별로 책임을 전가한다.

《제국의 위안부》와 책임의 영역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본군에게 법적 책임은 없다는 전제 하에 처음부터 ‘위안부’ 피해 여성에게 일본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없으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한일회담에서 한국정부에 의해 ‘위안부’ 피해자들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되었으며, 대신에 한국정부가 수취한 ‘경제협력’은 중일전쟁 이후에 관한 ‘배상’이었고, 하지만 그 어느 주장도 근거가 없으며, 박유하는 오히려 정반대의 주장을 전개하는 연구를 자신의 ‘논거’로 삼고 있었다. 더욱이 박유하는 고노 담화나 국민기금에서 ‘식민지 문제’에 대한 응답을 억지로 읽어내면서, 정대협이 ‘식민지 문제’를 소거하고 ‘전쟁’에 관한 것으로 왜소화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오류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 범죄와 전쟁 범죄의 중첩성을 간과한 것이다. 또한 《제국의 위안부》가 시도한 것은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박유하는 대일본제국 논리의 범위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래서 일본인 ‘위안부’와의 ‘애국’적 동기의 공통성, 병사와의 ‘동지적 관계’를 강조하고, 미성년자 징집으로 대표되는 ‘위안부’ 제도의 식민지주의적 성격을 억지로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말하는 ‘식민지 지배의 문제’는 조선 침략의 죄와 책임이나 전쟁범죄, 식민지 범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의 역사를 ‘일본인의 역사’로 다시 서술하고자 한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의 ‘제국의식’에 호소하여 조선을 ‘통치’한 자로서 예전에 ‘동지’였던 (구)식민지 ‘신민’들을 위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론은 전쟁 지도자의 책임을 말단의 ‘위안부’나 병사의 ‘협력’으로 바꿔치기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기능을 한다. 어떠한 의미에서도 식민지주의를 비판하는 담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
《제국의 위안부》는 얼핏 종래의 전쟁 책임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식민지 지배 책임의 관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한 저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의 핵심은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제국의 위안부’론은 식민지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친화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이 ‘애국’, ‘동지’, ‘협력’의 역사로서 ‘위안부’ 문제를 다시 서술하려는 시도였음은 이제 반복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1990년대 이래 ‘위안부’ 제도의 죄로서의 ‘책임’을 묻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제국’의 논리로 수정하려는 저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위안부》는 왜 절찬받을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제기한 것은 대일본제국의 책임과 동시에 ‘전후 일본’의 책임이기도 했다. ‘냉전체제’ 속에서 아시아에 대한 가해책임을 마주하지 않고 묻어둘 수 있었던 ‘전후’의 역사가 문제시되었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그 상징이었다. 하지만 박유하가 그리는 ‘전후사’ 이미지는 이것과는 정반대다. 박유하에 따르면 한일협정에서는 ‘전후보상’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보상.배상을 행했고, 1990년대의 고노 담화는 ‘식민지 지배 문제’에 응답하여 국민기금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도 행했다. 즉 ‘전후사’를 전쟁 책임, 식민지 지배 책임을 마주해온 역사로 그리고 있다. 다만 그것을 일본이 적절히 표현해오지 않았을 뿐이다. 이만큼 국민기금의 실패로 인해 상처 입은 ‘양심’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원하는 역사상도 없을 것이다. ‘전후 일본’의 진정한 역사는, ‘대일본제국’을 부정함으로써 발생하는 갈등을 회피하고 오히려 ‘대일본제국’과 공존하는 길을 택한 역사가 아니었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물음은 그러한 ‘전후’의 모습이었다.
《제국의 위안부》를 절찬함으로써 다시 일본 사회는 이 물음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한다. 현실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고투를 회피한 채 역사를 위조하여 ‘반성해왔다’는 영예만을 얻으려 하는 지적.도덕적 퇴폐가 《제국의 위안부》를 예찬하는 현상의 배후에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란, ‘일본군 무죄론’에 의한 ‘대일본제국’ 긍정 소망과 ‘전후 일본’의 긍정 소망이라는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욕망이 낳은 산물인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일본 사회 내부에 있는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를 근본적으로 되묻고 피해자들이 던진 물음의 진정한 의미를 진지하게 마주하는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의 차이
《제국의 위안부》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양자는 동일한 제목을 달고 있어 원서와 번역서의 관계를 표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번역 시의 생략과 가필, 수정의 과정에서 가해진 다양한 변용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박유하가 일본의 독자들의 어떠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책에 실린 구체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보면, 일본어판에서는 한국어판과 달리 “전후 일본의 역사는 ‘사죄.보상’을 해온 역사”라는 점이 더욱더 강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일조약의 시대적 한계를 보완하여 과거의 식민지화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던 한국어판의 기술은, 일본어판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죄’는 실제로는 제국이었던 나라들 중에 가장 구체적이었다”는 상찬의 표현으로 수정되어 세계사적이었던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모르고 ‘기억’하지 않은 한국 측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역사수정주의,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 정영환은 《제국의 위안부》 사태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일본 전국의 시민센터나 대학의 교정을 돌며 강연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보수화가 가져다준 역사수정주의의 조류에 대한 최초의 명확하고 구체적이고 본격적 연구 비판서로서의 학술적.사회적 기능을, 이 책이 훌륭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박유하 교수의 작업이 속하는 일본형型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전반적이며 정밀한 비판적 분석을 담는 한편,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수정주의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중요한 고찰과 경고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역사수정주의는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하나의 커다란 문제기도 하다. 소위 ‘뉴라이트’ 계통의 학자들이 제국주의 지배와 군사독재를 ‘자본주의 문명’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국정화’되어야 할 한국사 교과서에서 일제 지배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미화 등 수정주의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역사수정주의는 한국 시민사회가 직시하고 투쟁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과제로 부상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박유하의 작업이 뿌리내리고 있는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의 맥락을 매우 상세히 파헤친 이 책이야말로 한국 시민사회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는 그만큼 이 시대의 시민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화두들과 직결되어 있다.
이전 다음
이전 다음

함께 비치된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