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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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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유라시아 견문 / 이병한 지음
개인저자이병한= 李炳翰, 1978-
발행사항파주 : 서해문집, 2016-2019
형태사항3 v. : 삽화(주로천연색), 지도 ; 21 cm
기타표제걸어라 서쪽으로. 문명의 달빛을 따라
ISBN9788974838096 (v.1)
9788974839215 (v.2)
9788974839710 (v.3)
9788974838089 (세트)
내용주기v.1.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 v.2.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 v.3.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기금정보주기이 도서는 2017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사업임 (v.3)이 도서는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저술 지원을 받아 집필되었음 (v.3)
분류기호947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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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000일간의 유라시아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역사학자 이병한의 뜨거운 책, ≪유라시아 견문≫ 제2권 출간!

미래는 다시 ‘유라시아의 길’로 열린다!
유라시아 재통합 현장 견문 두 번째 이야기,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젊은 역사학자 이병한의 장대한 대서사,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의 제2권. 지난 2016년 첫 출간 당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면서 독자들에게 ‘개안(開眼)’의 충격과 열띤 논쟁을 선사했던 화제의 책이다. 저자는 구미 중심의 패권경쟁과 냉전질서로 유지되던 이제까지의 세계체제가 막을 내리고 동/서, 고/금, 구대륙/신대륙의 대반전(大反轉)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반전의 시대’라 명명한 바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반전’의 시대적 징후를 유라시아 도처에서 목도하며 증언하는, 성실하고 통찰 가득한 견문록이다. 단순한 기행이나 여행이 아니라, 가깝게는 《서유견문》을 잇고 멀리는 동방의 전통적인 연행록을 계승한다.

제1권이 중화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문명 간 교류와 재건을 통해 유라시아의 초원길과 바닷길이 다시 연결되고 부활하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었다면, 제2권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000일간의 유라시아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역사학자 이병한의 뜨거운 책, ≪유라시아 견문≫ 제2권 출간!

미래는 다시 ‘유라시아의 길’로 열린다!
유라시아 재통합 현장 견문 두 번째 이야기,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젊은 역사학자 이병한의 장대한 대서사,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의 제2권. 지난 2016년 첫 출간 당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면서 독자들에게 ‘개안(開眼)’의 충격과 열띤 논쟁을 선사했던 화제의 책이다. 저자는 구미 중심의 패권경쟁과 냉전질서로 유지되던 이제까지의 세계체제가 막을 내리고 동/서, 고/금, 구대륙/신대륙의 대반전(大反轉)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반전의 시대’라 명명한 바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반전’의 시대적 징후를 유라시아 도처에서 목도하며 증언하는, 성실하고 통찰 가득한 견문록이다. 단순한 기행이나 여행이 아니라, 가깝게는 《서유견문》을 잇고 멀리는 동방의 전통적인 연행록을 계승한다.

제1권이 중화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문명 간 교류와 재건을 통해 유라시아의 초원길과 바닷길이 다시 연결되고 부활하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었다면, 제2권에서는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인도양 세계와 페르시아 및 아라비아 세계를 조망한다. 제1권이 8세기 동북아와 동남아, 중앙아시아 및 인도까지 견문했던 신라 승려 혜초의 길과 겹친다면, 제2권은 14세기 북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이르렀던 이븐 바투타의 길과 흡사하다(그리고 제3권은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길과 겹칠 것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던 선구자들의 길을 21세기의 오늘날 계승한, 한국 아니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유라시아 대장정 1,000일의 기록’이다.

19세기가 대서양의 세기, 20세기가 태평양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단연 인도양의 세기일 것이다. 구대륙과 신대륙, 구세계와 신세계의 위상 전환에 인도양이 핵심적 자리에 위치한다. 인도양이야말로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구대륙을 아우르는 ‘지중해’인 셈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바다에 대한 인식의 제고, 감각의 환기가 필요하다. 인도양을 둘러싼 힌두/불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에는 유라시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인도는 미래의 G2이고 이슬람은 21세기 최대 종교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너무도 낯선 이 미지의 드넓은 공간에서는 이미 ‘다른 백 년’의 물결이 유장하다. 식민지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분할로 이어지는 남아시아 대분할체제,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붕괴 이후 아랍의 분열과 냉전으로 이어지는 서아시아 대분열체제 등 20세기의 모순을 극복하고, 그들이 영위해왔던 독자적인 문명 질서를 현대적인 스타일로 복구하는(중흥中興과 복국復國) 21세기의 섭리를 펼쳐내고 있다.

즉 세계는 지금, 서구 자본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는 ‘역사의 종언’(프랜시스 후쿠야마)이나 종교/문명 간 전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을 넘어, ‘유라시아 재통합’의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나라별로 토막 났던 국사(國史)들이 하나의 지구사(유라시아사)로 합류한다. 이러한 시대적 메가트렌드를 조망하다 보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 갇힌 우리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소중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유라시아 곳곳의 지식인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지성의 향연이다. 한국에 소개된 해외 사상가들이 워낙 서구에 편중되어 있기에, 저자는 지적 재균형을 위해서라도 유라시아 여러 문명, 여러 나라의 저명한 인사들을 만나 자신의 견문과 소회를 재차 확인한다. 제2권에서는 인도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현직 국회의원으로 유엔의 저명한 국제 관료였던 샤시 타루르, 이슬람 세계의 사상가이자 지도자인 여러 울라마(이슬람 율법학자)들, 아랍/중동의 소식을 전 세계에 전하는 대표적인 미디어 ‘알-자지라’의 초대 편집장 알-셰이크와의 뜨거운 대화들이 이어진다.

Point 1 미얀마 총선부터 인도의 힌두뜨와 실험까지, IS 근거지에서 터키 쿠데타까지
유라시아 격동의 ‘현장’을 가다


이 책은 현재 유라시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동의 순간들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담아내면서 그 기원과 역사까지 아우른다. 아웅산 수치가 승리한 2015년 미얀마 총선 현장(본문 26쪽)에서는 미얀마의 독립 영웅이자 수치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부터 우누, 우탄트, 네윈을 거쳐 ‘레이디’ 수치에 이르기까지, 미얀마의 근현대사를 돌아본다.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 세계 최장기 내전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인도양을 둘러싼 대일본제국과 대영제국의 유산을 만나게 되며(본문 40쪽), 버마식 사회주의와 미얀마식 자본주의 사이에서 미얀마의 ‘가지 못한 길’도 회감해보게 된다(본문 56쪽).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인도 역시 급변하고 있다. 네루의 국민회의가 압승했던 ‘1952년 체제’를 마감하고,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인민당(BJP)의 ‘2014년 체제’가 출범했다(본문 92쪽). 이 선거 혁명을 주도했던 21세기의 신청년들은 간디와 네루의 명문가 자제가 아닌 자수성가형 개인을,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를, 내부자가 아니라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것이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의 역설은 민주주의의 확산과 심화로 말미암아 힌두교가 복권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대중에게 힘을 부여한다. 그런데 그 절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세계가 여전히 힌두 문명 아래 자리한다. 즉 오늘날 인도는 민주화와 세계화, 힌두화가 공진화하면서 종교혁명과 정치혁명을 아우르는 힌두형 문명국가(힌두뜨와)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본문 120쪽, 132쪽). 그리고 오늘날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인도의 경세가이자 30년간 유엔의 국제 관료로 일해온 샤시 타루르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되짚어본다(본문 294쪽). (2006년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반기문에게 석패한 후보가 바로 타루르였다. 당시 유엔 내부에서 신망이 두터운 타루르가 사무총장이 되면 미국의 영향력 행사가 힘들어질 것을 우려해 미국이 반대한 것이라는 후일담이 있다.)

그런가 하면 2016년 7월 15일 밤, 터키 현대사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쿠데타 현장에도 저자가 있었다(본문 326쪽). 1923년 신생 터키공화국 수립 이래 터키 현대사는 군인들이 주도해오면서, 민간 지도자가 군부에 의해 제거되는 역사가 수차례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처음으로 무력에 의한 쿠데타 시도를 시민들이 막아낸 것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에르도안 대통령과 민간 정부를 국민이 지켜내었다. 그러나 구미의 언론 보도는 승리감에 도취된 이스탄불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위된 대통령’, ‘무자비한 대통령’, ‘폭력적인 군중’ 운운하며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들 간의 갈등, 독재자의 탄압과 시민의 저항이라는 상투적인 이미지들만 전시되었다. 저자는 그 이면에서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되짚어보며, 오늘날 터키의 새로운 방향 선회를 포착한다. 즉 더 이상 냉전의 파수꾼이자 미국의 중동 정책을 매개하는 첨병이기를 거부하는 터키식 ‘재균형’인 것이다. 아울러 지난 100년 오스만제국에서 터키공화국으로 쪼그라들며 질주해온 서구적 근대화(본문 372쪽)를 마감하고, 이제 풀뿌리 이슬람, 이슬람 민주주의, 신(新)오스만주의로 발진하고 있는 터키의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해본다(본문 391쪽).

지난 몇 해 동안 유라시아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IS(이슬람국가)였다. 저자는 이슬람 세계를 견문하는 내내 알-자지라를 비롯한 ‘아랍의 소리’를 청취하면서, 영어 공론장을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IS 탄생의 배경과 역사, 그들의 이념과 정체성을 추적하며 그 실체에 접근해간다(본문 340쪽). 그리고 아랍의 시각에서 중동의 소식을 전하는 대안적 미디어로서 현재 수십 개 채널의 글로벌 미디어로 진화한 알-자지라 본사를 방문해, ‘알-자지라의 전설’로 불리는 초대 편집장 아흐마드 알-셰이크를 직접 인터뷰한다(본문 568쪽). 아랍어 공론장의 규모는 20억 영어 공론장에 버금가는 16억 규모에 이르며, 아랍어 위성방송의 채널 수만도 700개를 넘어서 전 세계 위성 채널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중 독보적인 존재가 알-자지라다. “폭스 뉴스가 가짜 뉴스”라는 알-셰이크의 일침은, 우리가 얼마나 기울어진 공론장에서 편향된 시각으로 반쪽 세계에서만 살아왔는가를 뼈아프게 성찰케 한다. 아랍의 소리, 이슬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듣지 못하면 IS로 달려갔던 유라시아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저자가 늘 ‘현장’ 속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선입견이나 이념으로 오늘의 세계를 재단하지 말고, ‘실사구시’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고전을 학습하고 그들의 현재를 주시하면서, 그들의 논리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의 미래(=우리의 미래)를 전망해보자는 것이다. 18세기 북학파에게는 동아시아나 중화세계가 임계였겠지만, 오늘날의 세계는 훨씬 더 공간적 지평이 넓어졌다. 21세기의 실학자라면 응당 유라시아 전체의 형세와 기세를 두루 살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반도의 남과 북이 함께 가야 할 미래의 길 또한 동아시아 너머 동유라시아, 유라시아 전체일 것이다. 즉 유라시아를 ‘천하일가’로 삼는 담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실천력을 확보하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Point 2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유라시아-사(事/史)의 재구성
남아시아 대분할체제, 중층의 역사적 단층들을 만나다


이 책의 미덕은 그 뜨거운 현장에서 유라시아의 현재를 보여주는 유라시아-사(事)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곳곳에서 지난 세기 동안 단절되고 일그러진 유라시아-사(史)를 온전히 복원해내고 있다.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가 씨실과 날실처럼 종횡무진 엮이면서, 다채로운 중층의 ‘유라시아/사’를 재구성한다. 근대의 유럽과 태평양에 편중된 구미 중심의 역사 기억을 바로잡는, 이른바 ‘역사전쟁’, ‘기억전쟁’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도양 세계가 중요한 것은 20세기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데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극서 대영제국과 극동 대일본제국이 인도양에서 충돌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비로소 2차 세계대전의 전모가 드러난다. 유럽 전선과 아시아 전선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전쟁’으로 통으로 연동되어 있었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본문 167쪽). 그리고 그 끝에, 대일본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결코 무관치 않은, 대영제국 이후의 남아시아 대분할체제도 자리한다(본문 198쪽~267쪽).

20세기 최대의 분단국가는 남/북한도, 남/북베트남도, 동/서독도 아니다. 단연 인도/파키스탄이다.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인도는 13억, 파키스탄은 2억이다. 여기에 파키스탄에서 떨어져 나온 방글라데시도 1억을 훌쩍 넘는다. 남아시아가 대분할되지 않았다면 인도는 진즉에 중국보다 훨씬 큰 나라였을 것이다. 단숨에 세계 최대의 국가이자, 세계 최대의 힌두교 국가이며,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라는 복합제국적 성격을 자랑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이 무책임하게 철수하면서(인도/파키스탄 분할 계획 발표), 인도 아대륙에서는 범이슬람주의와 범힌두주의가 사납게 충돌했다. 결국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기 독립을 선포한다. 분단건국이었다. 그리하여 신생 국가 파키스탄의 모양새는 기형적인 것이었다(본문 214쪽 지도). 인도 아대륙의 서북에는 서파키스탄이 들어섰고, 동북에는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이 세워졌다. 한 나라이건만 서로 1,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벵골과 펀자브는 주 차원에서 동과 서로 분할되었다. 동벵골과 서펀자브는 파키스탄에, 서벵골과 동펀자브는 인도에 귀속되었다. 펀자브와 이웃한 카슈미르도 쪼개졌다.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근대 국가의 탄생이었다.

정부기관과 관료들, 서류더미와 각종 물품들까지 쪼개졌다. 인도에 남을 것이냐, 파키스탄으로 갈 것이냐. 좋은 물건을 남기고 나쁜 물건을 보내려는 쪽과, 나쁜 물건을 남기고 좋은 물건을 옮기려는 이들 간에 다툼이 그치지 않았다. 주요 대학과 공공도서관의 장서도 분할되었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자료는 파키스탄으로 보내졌다. 델리에 남아 있던 무굴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대거 유실된 것이다. 군대도 반 토막으로 쪼개야 했다. 대영제국에 복속되어 유라시아 전역에서 끈끈한 전우애를 쌓아왔던 군인들이 순식간에 무슬림과 힌두로 나뉘어, 파키스탄군과 인도군으로 서로를 겨누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군대의 분할은 장차 양 국가의 재통합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대분할체제 속에서 비대하게 성장해간 양국의 군부는 반동적 수구집단으로 자라났다.

분단건국으로 사태가 종결된 것도 아니었다. 근대 국가는 국민을 산출하고, 국민은 비국민을 양산하며, 난민을 국가 밖으로 배출한다. 수많은 피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20세기를 통틀어 최단 기간 내 최다 인구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피난의 경로 곳곳에서 힌두와 무슬림 간 폭동과 학살의 역사가 이어졌다. 오늘날 펀자브, 카슈미르, 벵골 등 인도 국경 지대 난민 사태의 비극도 그 뿌리는 이러한 대분할체제에 기인한다. 그리고 급기야 1971년, 파키스탄마저 분할돼 방글라데시가 탄생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닉슨-키신저와 마오쩌둥-저우언라이 등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동서냉전이 겹겹으로 교착되어 있다.

Point 3 포스트-오스만, 서아시아 대분열체제
아랍의 냉전부터 아랍 민족주의까지, 아랍의 분열과 재통합의 길항
1979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 혁명으로부터 이슬람 세계의 대반전이 시작되다


(서)아시아, (남)유럽, (북)아프리카 삼대륙을 아우르며 이슬람적 세계제국으로 600년간 지속해왔던 오스만제국(1299~1922)도 유럽 제국주의의 점령 아래 30여 개 인공 국가로 쪼개어져갔다. 다민족/다종교/다언어를 품어 안았던 ‘이슬람의 집’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부수고 근대의 민족주의와 국민국가로 질주해가면서, ‘지고(至高)의 국가’에서 ‘중동’으로 재편된 것이다. 이로써 오늘날 지상 최대의 화약고가 되었다.

이 서아시아 대분열체제의 모순이 응축된 곳이 바로 지중해의 ‘분단의 섬’ 키프로스다(본문 411쪽). 그리스, 페니키아, 페르시아제국, 이집트, 로마제국, 비잔티움제국, 오스만제국 등을 두루 거치면서 서로 다른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왔던 이 섬이 키프로스공화국(동방정교회)과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이슬람)으로 분단된 것은 1974년이되, 그 기원은 대영제국이 점령해온 187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오스만제국 최초의 독립국인 그리스 독립(1832) 이래 발칸반도 국가들의 독립, 터키 독립(1923), 키프로스 독립(1960), 북키프로스 독립(1983)으로 이어지는 ‘포스트-오스만’의 지중해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그리스 민족주의와 터키 민족주의를 격돌시킨 대영제국의 100년 통치(1878~1960), 영국.프랑스의 중동 분할책(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 전후 냉전체제 등이 켜켜이 얽혀 있다. ‘유라비아’의 개념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본문 543쪽). 아랍 문명과 유럽 문명이 지중해를 사이로 얼마나 긴밀했는가를 다시 환기하면서, 유럽과 아라비아를 통으로 사고해야 하는 것이다.

지중해와 아랍 세계의 연쇄적인 국민국가 분열/건국의 흐름 한편으로, 또 다른 역사적 조류가 싹트고 있었다. 아랍 세계의 대통합을 도모했던 ‘아랍 민족주의’ 운동이다(본문 444쪽, 460쪽). 조선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이 일어나던 해, 이집트에서는 거국적인 반영(反英)운동인 ‘1919년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혁명을 받아 안아 1922년 ‘독립국가’가 선포되었으되, 이는 대영제국이 이집트를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줌으로써 대영제국이 보호국임을 공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혁명 신세대의 대표주자인 나세르가 혁명가로 성장하여 향후 아랍 민족주의의 불을 지피게 된다. “아랍 민족은 하나”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결국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한 ‘아랍연합공화국’ 출범으로 현실화되고, 이는 이웃한 이라크와 알제리, 레바논, 요르단, 예멘 등에까지 영향을 미쳐 아랍 세계의 대통합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아랍군은 6일 만에 초토화되고, 아랍몽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이렇듯 한편으론 아랍 세계의 냉전과 분열이, 다른 한편으론 아랍의 재통합이 길항하는 가운데, 새로운 반전의 흐름이 아랍의 동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79년 2월 1일,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이슬람 혁명)이다(본문 472쪽).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49년 중국 혁명에 필적하는 세기적인 사건이었다. 냉전기 ‘페르시아만의 헌병’으로서 중동 최대의 친미 국가이기를 멈추고, 이슬람 문명[古]과 공화정치[今]를 결합한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것이다. 미국은 곧 중동의 말[馬]을 이라크로 바꾸어 사담 후세인을 지원함으로써 이란 혁명을 분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발발한 것이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다. 걸프전쟁(1991)부터 이라크전쟁(2003)까지 ‘이라크 문제’의 씨앗이 이때 뿌려진 것이다. 그러나 호메이니는 이 전쟁을 국가 간의 전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무슬림과 이교도 사이의 ‘이슬람 전쟁’ 혹은 ‘문명의 충돌’로 이해했다. 이로써 ‘아랍 민족주의’에서 ‘이슬람주의’로 반체제 이데올로기가 전환되고, 아울러 중동의 세력 균형만이 아니라 담론 구조 자체가 반전되었다.

이슬람 혁명의 파문은 국경 밖으로도 퍼져갔다. 이란이 미국의 ‘자유주의 제국주의’에 맞서서 이슬람 혁명을 쟁취했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사회주의 제국주의’에서 떨쳐 일어나 이슬람 혁명을 성취코자 한 것이다. 백색도 적색도 아닌 녹색 깃발을 들자, 수많은 무슬림들이 의용병으로 참전했다. 그곳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소련은 침몰되어 갔다(1991). 그리고 10년 후 그 후예들(알-카에다)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상징적 건물인 뉴욕의 세계무역빌딩도 폭파한다(2001). 1979년 이란 혁명의 파문이 탈냉전을 촉발하고 21세기를 격발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의 지정학도 요동치고 있다. 이슬람에 공화정을 접속시킨 혁명국가의 등장은, 서방의 획책으로 분할된 영토에서 영주처럼 군림하던 지배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었다. 1981년 쿠웨이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리트가 서둘러 걸프협력기구(GCC)를 형성한다. 왕정국가들이 연합하여 공화혁명의 확산을 저지코자 했다. 그럼에도 35년이 지난 오늘날, 이란의 영향력은 아랍 세계 전반으로 미치고 있다. 21세기의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예멘, 알제리, 튀니지,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 파키스탄, 그리고 터키까지 이슬람 세계는 온통 1979년 이란 혁명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고 있다. 즉 어느새 이란은 근대 국가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서, 동쪽으로는 인도의 펀자브 지방부터 서쪽으로는 이집트까지, 남쪽으로는 아라비아반도부터 북쪽으로는 흑해 연안까지, 페르시아 세계의 좌장 역할을 복원해가고 있는 것이다.

Point 4 유라시아의 대반전은 계속된다
생활세계의 재편, 정치적 영성, 미래의 학문, 신(新)천하도


오늘날 유라시아 대반전의 흐름은 생활세계에서도 깊이 감지된다. 힌두의 요가(본문 155쪽)와 이슬람의 히잡(본문 557쪽), 그리고 요기(인도 철학자/수행자)식 라이프 스타일과 울라마(이슬람 율법학자)식 라이프 스타일이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매력을 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민중화/민주화/세계화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영성’의 개념과 직결된다.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대리인들을 대표로 선출했던 저급한 민주주의에서, 나를 더더욱 나은 사람, 사람다운 사람으로 고무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을 대표로 삼는 고급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이다. 지난 100년의 정치 논리였던 세속과 종교의 분리가 아니라, 더욱 고등한 형태로 성(聖)과 속(俗)이 재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이 ‘미래의 정치’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유교 문명권에 ‘천하’가, 힌두/불교 문명권에 ‘만달라’가 있었다면(이상 제1권), 이슬람 문명권에는 ‘움마’(이슬람 공동체)가 있다. 저자는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울라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움마’의 개념과 정신, 샤리아(이슬람의 법)와 와크프(공유제) 등 이슬람 세계의 정치/경제/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근본 틀을 깊이 탐색해간다(본문 505쪽). 나아가 그들의 시각으로 지난 20세기의 역사를 다시 조망해보고, 오늘날 중동/아랍의 뜨거운 이슈인 IS부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 난민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이렇듯 유라시아를 분단/분할/분열시켰던 ‘거대한 체스판’이 ‘촘촘한 그물망(network)’으로 갱신해가면서, 이제 국경으로 나뉜 19세기형 세계지도 대신 21세기판 ‘신(新)천하도’가 필요한 때이다. 각 도시들과 그 도시들을 잇는 다양한 연결망, 고속도로, 고속철도, 공항, 송유관, 인터넷 등을 표기하는(유라시아의 기와 혈이 흐르고 맥이 통하는) 일종의 ‘지도 다시 그리기’(re-mapping)이다. 그 신천하의 그물망 속으로 깊숙이 접속해 들어가는 것이, 장차 한반도의 남과 북이 합작해야 할 미래사업(창조경제, 제4차 산업혁명)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학문의 지형도도 재편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19세기 이전까지 천 년의 세계어/문명어였던 페르시아어와 아랍어가 (이슬람 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이들의 소비력이 증대하면서) 다시 세계어의 위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코 먼 미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대학이라면, 현재의 (한)국학과 서(구)학 득세에서 이슬람학이 3분의 1의 위상을 차지하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 세계 석학들이 모여서 ‘천하와 움마’를 주제로 토론할 날도 머지않았을지 모른다. 나라별로 쪼개져서 경쟁했던 ‘세계(World)’라는 관념으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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