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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대원제국

애탕 송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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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중국의 역사) 대원제국 / 오타기 마쓰오, [데라다 다카노부] 지음 ; 윤은숙, 임대희 옮김
개인저자애탕 송남= 愛宕 松男, 1912-2004
사전 륭신= 寺田 隆信, 1931-
윤은숙, 1967-= 尹銀淑,, 역
임대희= 任大熙, 1953-, 역
발행사항서울 : 혜안, 2013
형태사항295 p. : 삽화 ; 23 cm
원서명モンゴルと大明帝国
ISBN9788984944695
일반주기 연표: p. 277-281
본서는 "モンゴルと大明帝国. 1998."의 번역서임
서지주기참고문헌(p. 267-276)과 색인수록
주제명(지명)China --History --Yuan dynasty, 1260-1368
China --History --Ming dynasty, 1368-1644
일반주제명Mongols --History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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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 다원주의적 국가, 대원제국에 대한 두 개의 시각
대원제국(大元帝國)이 몽골인 지상주의를 내세운 칭기스칸 후예들의 왕조임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동시에 대원제국의 중요 통치대상이었던 동아시아는 중국적 요소들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의 통치에서 중국적 성격을 배제한 채 역사전개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대원제국의 양면성은 도외시한 채 어느 한 가지 요소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대원제국의 유목적 또는 몽골적 속성을 강조한 이들은 전형적인 몽골왕조로, 중국의 역사 전개를 우선시하는 이들은 대원제국을 원조(元朝)라는 틀에서 중국왕조라고 쉽게 규정지어 버리기도 한다. 이리하여 어느덧 대원제국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이 혼재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느 일방적 시각으로 대원제국을 단정짓는 것 자체가 대원제국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대원제국은 몽골적 요소와 중국적 요소라는 이질적 속성들의 충돌과 혼합을 통해 새로운 통합적 질서를 추구했던 다원주의적 국가였기 때문이다. 비록 대원제국에는 몽골적인 것이 범람하고 중국적인 것은 다소 쇠퇴하기는 했으나 통치의 대상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중...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 다원주의적 국가, 대원제국에 대한 두 개의 시각
대원제국(大元帝國)이 몽골인 지상주의를 내세운 칭기스칸 후예들의 왕조임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동시에 대원제국의 중요 통치대상이었던 동아시아는 중국적 요소들이 넘쳐나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의 통치에서 중국적 성격을 배제한 채 역사전개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대원제국의 양면성은 도외시한 채 어느 한 가지 요소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대원제국의 유목적 또는 몽골적 속성을 강조한 이들은 전형적인 몽골왕조로, 중국의 역사 전개를 우선시하는 이들은 대원제국을 원조(元朝)라는 틀에서 중국왕조라고 쉽게 규정지어 버리기도 한다. 이리하여 어느덧 대원제국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이 혼재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느 일방적 시각으로 대원제국을 단정짓는 것 자체가 대원제국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대원제국은 몽골적 요소와 중국적 요소라는 이질적 속성들의 충돌과 혼합을 통해 새로운 통합적 질서를 추구했던 다원주의적 국가였기 때문이다. 비록 대원제국에는 몽골적인 것이 범람하고 중국적인 것은 다소 쇠퇴하기는 했으나 통치의 대상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중국적 요소를 전면적으로 배제시킬 수는 없다. 또한 한적(漢籍) 사료인 <원사(元史)>의 서술처럼 중국적 요소들을 강조함으로써 북방 기마 유목민이었던 몽골의 지향과 속성을 경시하고 중국 중심적 시각으로만 대원제국을 이해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따라서 대원제국이 몽골적 속성과 중국적 요소들의 충돌과 결합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통합을 만들어 나갔는가를 살피는 작업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대원제국의 통치대상이 되었던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중국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기존의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문명사적 자화상들이 몽골의 역동적 힘에 의해 철저히 흔들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원제국>은 크게 몽골제국 성립 이전의 거란, 여진 등의 북방왕조, 몽골제국의 성립과 중국 지배과정, 그리고 대원제국의 중국 통치 양상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눠서 서술되어 있다.

■ 대원제국이 중국에 남긴 유산
일본을 대표하는 원사(元史) 연구자인 저자 오타기 마쓰오(愛宕松南, 1912~2004) 교수는 몽골인들의 중국 통치가 중국에게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대원제국의 중국 통치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몽골의 통치를 받았던 사대부로 대표되는 중국인 치자(治者)집단들에게는 대원의 통치가 아픔으로 기억되겠지만, 오히려 일반 대중들에게는 일정 정도 출세의 기회가 보장된 수평적 사회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대원이 주도하는 문화가 남송 치자집단에게는 자신들의 고고한 문화에 비해 저속하다고 평가될 수 있겠지만, 일반 대중들까지 향유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의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문화의 대중화 현상은 대원제국에서 시작해 명대를 거쳐 청대로 전달되고 있다.
둘째, 이 책 곳곳에서 저자는 통치자 몽골인들이 중국 통치에 미숙했음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이 미숙함은 유목적 환경에 익숙한 몽골인들에게는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선 북방왕조들이 중국 통치에 실패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한화(漢化)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 미숙함은 몽골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몽골은 자신들의 유목적 속성과 지향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색목인을 일종의 방어망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즉, 색목인을 몽골인에 준하는 자로 우대하면서 색목인 사회라는 특수성으로 전체 속에서 존속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동화력이 강한 중국문화에 색목인은 물론이고 몽골인까지도 함몰될 가능성이 있기에 몽골은 색목인의 중국 문화로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색목인 고유의 관습법 폐지’를 엄격히 금지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자에게 “색목인으로서의 대우를 정지한다”는 징벌을 가차 없이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몽골 중심주의 원칙을 통해 동화력이 강한 중국 문화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야 했던 소수자 몽골의 깊은 고뇌가 큰 울림으로 와 닿는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동시에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몽골인들에게 이러한 통치방식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였을 것이다.
대원제국의 출현은, 10세기 이래 요·금·서하와 송 등 왕조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동아시아가 오랜 분열의 종지부를 찍고 대통합으로 가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동아시아의 분열은 단지 중국적 요소들의 의한 것이 아니라 정복왕조와 한족왕조와의 대립이 그 바탕에 놓여 있었다. 대원제국의 출현은 이러한 양자 사이의 대립에서 결국 힘의 우위를 가진 이민족 왕조가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몽골의 중국 지배의 결과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향후 역사 전개에 돌이키기 어려운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대원제국 멸망 후에 성립된 명조(明朝)는 대원제국 100년의 통치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지만 100년의 흔적은 오히려 명조 270년의 역사를 특징짓는 하나의 전형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원제국이 명조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통일왕조의 수도 베이징(北京)일 것이다. 대원이 만들어낸 통일의 기조는 명을 거쳐 청대로 연결되었으며 예외 없이 그들의 수도는 베이징이 되었다. 베이징은 유목의 마지노선으로 불릴 정도로 건조한 곳이기에 중국인들의 수도로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북방의 유목적 요소와 남방의 농경적 요소를 제어하기 위한 통일왕조의 수도로서는 최적의 장소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비록 대원제국의 중국 지배는 14세기 말로 종결되지만, 이민족 왕조의 중국정복은 200여 년 후 만주족 청(淸)에 의해서 재현된다. 특히, 홍타이지의 대청제국 선언이 몽골로부터 전국옥새(傳國玉璽)를 받은 이후에 가능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울러 대청제국 황후들의 대다수가 몽골족이었음은 청의 중국 지배에 몽골이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청제국의 등장은 대원제국의 흔적이 200여 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대원제국에 대해 몽골적이거나 중국적이라는 편향적인 시각에 의해서가 아닌 양자의 결합을 통한 다양성과 새로운 지향을 향해 도전했던 다원주의적 국가였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몽골의 중국 통치방식은 다원주의적인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확신하면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다만, 이 책은 대원제국의 중국 지배와 통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아시아·유럽을 아우른 방대한 몽골 세계제국을 기대하고 책을 펼치는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각을 동아시아 세계로 한정해 본다면, 대원제국은 그동안 정복왕조들의 잇단 중국 지배에 대한 도전이 드디어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대원제국은 앞선 정복왕조들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중국통치를 실현하고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점에 착안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대원제국에 의한 중국 지배의 성공과 실패에서 독자들은 많은 시사점을 얻게 될 것이다. 원대사를 전공한 옮긴이의 매끄러운 원문 번역과 원문에는 없는 풍부한 사진들과 지도들도 독자의 이해를 크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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