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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서울 도시사회 연구 : 한성의 거리와 주민

길전 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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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근세 서울 도시사회 연구 : 한성의 거리와 주민 / 요시다 미츠오 지음 ; 김동철 옮김
개인저자길전 광남= 吉田 光男, 1946-
김동철= 金東哲, 1955-,, 역
발행사항서울 : 심산, 2019
형태사항339 p. : 삽화 ; 23 cm
총서명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Humanities ; 11
원서명近世ソウル都市社会研究 :漢城の街と住民
ISBN9788994844602
일반주기 색인수록
본서는 "近世ソウル都市社会研究 : 漢城の街と住民. 2009."의 번역서임
기금정보주기이 책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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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이 책은 근세 서울 및 한국 근세도시에 대한 역사학적 접근을 시도한, 일본에서는 최초의 연구서다. 호적 등 1차 자료의 정보 정리를 기초로 해서, 거리와 주민의 양상에 대하여 가능한 복원하여, 당시 한성(漢城)이라 불리었던 근세 서울이 도시로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가에 대하여 검토를 시도하였다.

한국 근세도시의 정의에 관해서는 연구자 사이에 명확한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근세에서 도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부터, 조선왕조시대(1392~1897년)의 전 시기를 통해서 조선 전역에 335개 전후가 존재했던, 정부의 지배 거점인 읍성(邑城) 모두를 도시로 간주하는 것까지, 그 폭이 넓다. 필자는 조선왕조의 수도 한성, 고대(고구려) 왕도(王都)로부터의 계승성을 가진 북부 지방의 중심지 평양,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18세기말에 국왕 영조에 의해 한성의 부도〔副都, 부수도〕로 건설된 수원, 이 네 곳은 적어도 도시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네 곳 모두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설 점포인 시전(市廛)이 개설되었다는 점에 공통된 특색이 있다. 이 외에, 남서부 지방의 중심지인 전주나, 남동부 지방의 중심지인 대구 등에도 도...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이 책은 근세 서울 및 한국 근세도시에 대한 역사학적 접근을 시도한, 일본에서는 최초의 연구서다. 호적 등 1차 자료의 정보 정리를 기초로 해서, 거리와 주민의 양상에 대하여 가능한 복원하여, 당시 한성(漢城)이라 불리었던 근세 서울이 도시로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가에 대하여 검토를 시도하였다.

한국 근세도시의 정의에 관해서는 연구자 사이에 명확한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근세에서 도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부터, 조선왕조시대(1392~1897년)의 전 시기를 통해서 조선 전역에 335개 전후가 존재했던, 정부의 지배 거점인 읍성(邑城) 모두를 도시로 간주하는 것까지, 그 폭이 넓다. 필자는 조선왕조의 수도 한성, 고대(고구려) 왕도(王都)로부터의 계승성을 가진 북부 지방의 중심지 평양,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18세기말에 국왕 영조에 의해 한성의 부도〔副都, 부수도〕로 건설된 수원, 이 네 곳은 적어도 도시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네 곳 모두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설 점포인 시전(市廛)이 개설되었다는 점에 공통된 특색이 있다. 이 외에, 남서부 지방의 중심지인 전주나, 남동부 지방의 중심지인 대구 등에도 도시적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존재를 도시로 파악할 것인가?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다, 어느 정도의 인구 집적과 주민의 밀집성, 농촌과는 다른 직업 신분의 존재, 정기시장의 거점 등, 몇 가지 지표를 세움으로써 공통성을 찾을 수 있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 근세도시가 가진 역사사회적 성격을 해명하는 첫걸음으로서, 한반도의 권력 중심지였던 한성을 검토하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근세에 대하여 필자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보면, 16세기 말에 일어난 일본군의 침입〔임진왜란〕과 17세기 초에 일어난 후금(청)군의 침입〔정묘, 병자호란〕에 의한 대혼란을 받았던 변동의 시기를 시작 시기로,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에 의한 자본주의 세계시장과 만국공법 체제로의 편입을 끝나는 시기로 생각하고 있다. 근대세계 속에서 이른바 한국적 개성의 원형을 형성했던 시대다. 시작 시기는 일본에서 도쿠가와(德川)막부의 성립 및 중국에서 명청(明淸) 교체와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 끝나는 시기 또한‘근대’적 세계로의 편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중국과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 한국·일본·중국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역사적 전환이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을 공통으로 하면서 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역사가 강한 내적 연관성에 의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지역이 그 모든 영역에서 한꺼번에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영역에 따라 변화 속도는 다르다. 일단 사회·문화라는 영역에 시점(視點)을 두고 보면, 정치·경제 변화와는 시간적인 편차가 생겨서, 근세가 끝나는 시기는 20세기 초 이후까지 연장된다. 정치·경제라는 보편적인 체제는 외부로부터의 강제력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하지만, 사회·문화 변화는 그 정도로 급격한 것은 아니다. 한성 또는 한국 근세도시에서도, 20세기 초까지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사회적 여러 관계는 변화하면서도 뿌리 깊게 존재하였다. 이것을 ‘사회적 근세’의 계속이라고 말하여 두자. 이 책이 취급하는 시간적 범위가 20세기 초까지 미치면서도, ‘근세’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은, 한성의 사회적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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