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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도는 왜 독도인가 :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들려주는 우리 땅 독도 이야기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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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우산도는 왜 독도인가 :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들려주는 우리 땅 독도 이야기 / 이기봉 지음
개인저자이기봉= 李起鳳, 1967-
발행사항김포 : 소수, 2020
형태사항285 p. : 천연색삽화 ; 23 cm
총서명지락재 ;02
ISBN9791187312130
9791187312055 (세트)
서지주기참고문헌(p. 277-278)과 색인수록
기금정보주기이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9년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 이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음
분류기호951.9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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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고지도 전문 연구자가 말하는 ‘우산도=독도’, 그 실증적 이야기
우리나라 고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다. 하지만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있거나 울릉도 동쪽 가까이에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어, 독도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은 우리 자료의 이런 약점을 공격하며 ‘우산도=독도’를 부정하는 억지 주장을 편다.
이에 고지도를 포함한 우산도 관련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우산도가 왜 독도인지를 명확히 밝힌다. 그것은, 측량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하나의 섬이 어떻게 국가의 공식 인정을 받고 국가 표준 지리지에 수록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독도인 우산도의 정보가 확보되고 그 지식이 전파되는 과정까지 살핀다.
우리나라 지리 역사에서 우산도와 관련된 중요한 순간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해, 누구나 일본에 논리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림 목록과 찾아보기도 상세하다.
소수출판사의 ‘지락재(至樂齋)’ 두 번째 도서이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9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 독도가 우산도로 기록되다
우리에게...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고지도 전문 연구자가 말하는 ‘우산도=독도’, 그 실증적 이야기
우리나라 고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다. 하지만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있거나 울릉도 동쪽 가까이에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어, 독도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은 우리 자료의 이런 약점을 공격하며 ‘우산도=독도’를 부정하는 억지 주장을 편다.
이에 고지도를 포함한 우산도 관련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우산도가 왜 독도인지를 명확히 밝힌다. 그것은, 측량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하나의 섬이 어떻게 국가의 공식 인정을 받고 국가 표준 지리지에 수록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독도인 우산도의 정보가 확보되고 그 지식이 전파되는 과정까지 살핀다.
우리나라 지리 역사에서 우산도와 관련된 중요한 순간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해, 누구나 일본에 논리적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림 목록과 찾아보기도 상세하다.
소수출판사의 ‘지락재(至樂齋)’ 두 번째 도서이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9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 독도가 우산도로 기록되다
우리에게 독도는 매우 기록되기 어려운 섬이었다. 마실 물을 지속적으로 구할 수 없고 경제적 이득을 취할 것이 거의 없는 작은 돌섬이었다. 일본에서는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울릉도로 가는 항로의 중간 지점에 독도가 있었으나, 우리나라 본토에서는 울릉도를 왕래할 때 거쳐 갈 수 없었고 고려시대 이후 동해로 일본을 오가는 외교 항로가 운영되지 않아 일본을 오가는 항로 중간 지점의 지표 역할을 할 수 없었다.(26~27쪽)

1. 무릉등처→우산무릉등처
하지만 조선 태종은 안무사 김인우를 파견하여 동해를 조사했고, 동해에서 무릉(도) 아닌 다른 섬을 ‘우산’이라 이름했음을 ‘우산무릉등처’ 표현으로 알 수 있다. “우산?무릉”이란 표현은 이후 계속되었고, 이는 조선의 중앙정부가 동해에 이름을 다르게 부를 수 있는 두 섬이 있다고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두 섬은 확고한 영토 인식으로 국가 편찬 지리지인 『신찬팔도지리지』(1432)에 이어 『세종실록』 지리지(1454)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2. 실재하는 섬, 우산도
세종 때와 성종 때 수많은 사람들이 동해에 우산도와 울릉도가 아닌 새로운 섬으로 요도나 삼봉도에 갔다 왔다고 했지만, 중앙정부가 파견한 관리가 섬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 그 존재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 편찬 지리지에 수록되지 못했다. 동해 가운데에 울릉도 외에 우산도만이 유일하게 국가의 공식 인정을 받고 이들 지리지에 수록되었다.

■ 고지도는 어떻게 제작되었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근대 이전에는 대체로, 직접 현장을 살피지 않고 기존의 지리지나 지도의 정보에 기초해 지도를 만들었다.(63쪽) 대략적인 위치를 알리는 것이 목적으로,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았다.(119쪽)
따라서 지도 속 우산도가 어떤 섬을 그린 것인지 파악할 때 근대적 측량 지도의 정확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며(132쪽), 지도 제작자가 어떤 자료를 참고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옛 지도에서는 위치가 잘못된 것이 많은데, 우산도에만 높은 정확성의 잣대를 대는 것은 맞지 않는다.

■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그려지다
1463년 정척과 양성지가 제작한 「동국지도」에서 우산도는 왜 울릉도 서쪽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로 그려졌을까. 정척과 양성지는 동해 가운데 독도를 우산(도)으로, 우산과 무릉 두 섬을 기록한 당시의 정설인 『신찬팔도지리지』를 따라 두 섬을 그렸으며, 거기에 두 섬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정보 없이 우산(도)·무릉(도) 순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본토를 중심으로 차례로 그려, 지도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64~66쪽)
그렇다면『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와 강원도 지도 속 우산도의 경우는 어땠을까?(116쪽)

■ 지리지에 담긴 투철한 역사 서술의 정신-술이부작(述而不作)
‘우산·무릉은 본래 두 개의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인다’는 동일한 인식을 서로 다른 시대의 관점에서 써줄 정도로 편찬자들은 철저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일설에 우산·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 한다.”라는, 이전에 없던 표현이 덧붙어 있다. 왜 이렇게 썼을까?
국가의 공식 견해로 우산도와 울릉도 두 섬이 서로 다른 섬임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설(異說)도 밝혀 ‘전해지는 내용을 기술만 하지 창작하지 않는다(述而不作)’는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115쪽) 이 문구를 당시 우산도와 울릉도가 본래 한 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역사 서술의 큰 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111쪽)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역사 서술의 정신을 일본은 왜곡, 무시하고 있다.

■ 「동람도」식 소형 지도책, 우산도가 다양한 이름과 위치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9장의 지도는 「동람도」라고도 일컬었는데 이후 소형 지도책을 견인했다. 「동람도」식 소형 지도책 속 강원도 지도에는 여러 번 베껴 전해지는 과정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남쪽에 나타나는가 하면, 방산도·자산도·간산도로 기재되거나 아예 빠지기도 했다.(118~124쪽)

■ 지도상에서 우산도의 위치를 바꾼 안용복 사건 그리고 일본과의 치열한 외교전
1693년 안용복과 박어둔이 울릉도에 갔다가 일본인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696년 안용복은 3년 전에 울릉도 우산도가 조선 땅임에 대해 일본 관백의 외교문서까지 받았던 것을 분하게 여겨 일본에 자발적으로 건너갔는데, 『숙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안용복은 이때 우리나라 본토→울릉도→자산도(우산도, 송도)→일본의 옥기도→일본의 본토 백기주로 이동했다. 이 경로는 울릉도의 동쪽에 자산도가 있음을 뜻하고, 조선 정부에 새로운 정보가 되었다.
안용복의 이야기는 조선의 지식인 사이에도 중요한 화제였고 이익의 『성호선생사설』 「울릉도」에도 수록되었는데, 안용복이 영웅으로 평가돼 있다.

■ 미스터리: 소위우산도(所謂于山島)가 그려지다
1720년 안팎에 제작된 전국 그림식 고을 지도책 속의 울릉도 지도에 ‘소위우산도(所爲于山島)’라 쓰인 섬이 울릉도 동쪽에, 다섯 개의 부속 섬이 울릉도 남쪽에 나타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박석창의 「울릉도도형」(1711)에서 울릉도 남쪽에 다섯 개 섬의 흔적과 함께 동북쪽에 현재도 파악할 수 있는 바위섬들이 그려진 것, 『해동지도』의 「대동총도」에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있고 북서~북동쪽에 다섯 개의 부속 섬이 그려진 것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1693년 안용복 피랍 사건 이후 첫 번째 울릉도수토관으로 파견된 장한상은 울릉도 바로 동쪽의 댓섬[竹島]과 독도의 존재를 모두 보고했다. 이를 보면 전국 그림식 지도책(1720) 울릉도 지도 속 소위우산도는 독도인 우산도가 아니라 댓섬임을 알 수 있다.

■ 우산도가 울릉도 동쪽에 그려지다
우리나라를 근대의 측량 지도처럼 그린 첫 번째 지도 제작자이자 실학자인 정상기는 당시까지 울릉도 서쪽에 그려졌던 우산도를 획기적이게도 정반대편, 울릉도 동쪽에 그렸다.
우산도가 울릉도 동쪽에 있다는 사실은 안용복 사건을 통해 밝혀졌고, 『숙종실록』과 이익의 『성호선생사설』에 자세하다. 정상기는 이익과 동시대인으로서 그와 매우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상기는 그러나 우산도가 울릉도에서 얼마큼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지도에 백리척(百里尺)이란 축척을 사용하고 설명 글을 적어 넣었는데, 이에 따르면 수로가 멀어 거리를 알 수 없는 경우 섬을 지도 끝부분에 붙여 그렸다.(196쪽) 그러므로 이 원칙에 맞추어 우산도를 울릉도 동쪽 가까이 붙여 그린 것은 자연스럽다.(217쪽)

■ 신경준, 조선 후기 국가 표준 정보로 확립하다
신경준은 영조의 명을 받아 지도를 제작하고 국가의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의 지리 부분인 「여지고」를 저술하면서 안용복 사건도 자세히 서술했다. 신경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전기의 문헌에 나오는 우산(도)을 독도로 인식했으므로 그의 지도 속 우산도는 독도다.

■ 일본은 어떤 약점을 노리나
일본은 ‘우산도=독도’를 부정하는 선험적 목표를 갖고 있으며, 우리 문헌의 약점과 허술한 논리를 파고든다.
우산국에 독도가 포함되었는지, 가지섬이 독도인지, 확실한 역사적 근거 자료에 기초하지 않으면 일본의 억지 주장을 부추기고 역공의 빌미를 줄 뿐이다.

■ 부록: 그림 목록과 찾아보기
그림 목록에 독도(우산도)가 그려진 중요한 고지도들의 내용과 출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또한 찾아보기가 인명, 자료명, 일반으로 구분되고 주제명 색인의 역할이 부여되어 상세하다. 세목 구분으로 고문헌 속 우산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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