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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마운틴 칼리지 : 예술을 통한 미래 교육의 실험실

김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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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블랙마운틴 칼리지 : 예술을 통한 미래 교육의 실험실 / 김희영 지음
개인저자김희영
발행사항서울 : 사회평론아카데미, 2020
형태사항336 p. : 삽화 ; 24 cm
대등표제Black mountain college :an education lab for the future
ISBN9791189946579
서지주기참고문헌(p. 320-324)과 색인수록
기금정보주기이 저서는 2016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분류기호700.7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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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블랙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는 경제 대공황 시기인 193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산자락의 작은 마을 블랙마운틴에 세워진 교양대학으로, 실험과 경험을 중요시한 존 듀이의 교육 철학에 근거하여 설립·운영되었다.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물리학자 테오도르 드레이어가 설립을 주도했으며,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온 바우하우스의 요제프 알베르스가 미술을 가르친 이 학교는, 실습과 학제 간 교육을 통해 학생 개인이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적인 민주 시민으로 키우려 했던 실험적인 예술 공동체였다. 비록 재정 문제로 인해 1957년 24년간의 교육 실험은 막을 내렸지만,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에서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예술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선도함으로써 학교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인 성장을 통한 전인교육을 목표로 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시대를 앞서간 ‘미래 교육의 실험실’이었다.
위기의 시기 개인의 창의력을 발현하고 주체적인 민주 시민을 키우고자 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블랙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는 경제 대공황 시기인 193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산자락의 작은 마을 블랙마운틴에 세워진 교양대학으로, 실험과 경험을 중요시한 존 듀이의 교육 철학에 근거하여 설립·운영되었다.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물리학자 테오도르 드레이어가 설립을 주도했으며,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온 바우하우스의 요제프 알베르스가 미술을 가르친 이 학교는, 실습과 학제 간 교육을 통해 학생 개인이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적인 민주 시민으로 키우려 했던 실험적인 예술 공동체였다. 비록 재정 문제로 인해 1957년 24년간의 교육 실험은 막을 내렸지만,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에서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예술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선도함으로써 학교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인 성장을 통한 전인교육을 목표로 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시대를 앞서간 ‘미래 교육의 실험실’이었다.
위기의 시기 개인의 창의력을 발현하고 주체적인 민주 시민을 키우고자 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교육적 실천은 21세기 한국 교육에 도전적인 전망을 던진다. 이 책은 1세기 이전에 이미 예술을 통한 통섭과 융합 교육을 실제로 진행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설립 배경을 비롯해 실제 이루어진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들려줌으로써 21세기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새로운 교육 담론을 형성하는 데 단단한 밑거름을 제공한다.

오래된 미래 교육의 실험실, 블랙마운틴 칼리지
― 예술을 통한 통섭과 융합 교육의 실천 현장을 가다


근대 예술 교육기관을 언급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1919년 독일에 세워진 ‘바우하우스’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수많은 실험 교육을 통해 다수의 예술가와 건축가를 양산했으나 히틀러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1933년 문을 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같은 해 미국에서는 예술 교육을 표방한 블랙마운틴 칼리지(이하 BMC)가 세워진다. 국내에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의 이 학교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 인근의 작은 마을 블랙마운틴에 세워진 교양대학이다. 실험과 경험을 중요시한 존 듀이의 진보적인 교육 철학에 근거하여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물리학자 테오도르 드레이어가 설립을 주도한 이 학교는 지식을 축적하기보다는 지성과 감성을 균형 있게 키우는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였고, 예술을 배움의 중심에 두면서 실습과 학제 간 교육을 함께 해 나갔다. 초기에는 히틀러의 전체주의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바우하우스의 요제프 알베르스가 미술을 가르쳤는데, 이처럼 BMC는 유럽의 권위주의 독재를 피해 망명한 사람들의 은신처로도 기능했다.
BMC는 경제 대공황 시기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위기의 시기에 진보적인 교육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실험하며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곳이다. 즉, 경쟁에 기초한 교육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교육을 통해 학생 개인이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적인 민주 시민으로 키우려 했던 실험적인 공동체였다. 특히 배경과 관심사가 다른 학생과 교수들은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실행이 없는 배움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배웠으며, 관습에 매인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태도를 익혔다.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기 BMC에서는 1944년 여름에 처음으로 흑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기도 했다.
BMC의 창의적인 교육은 재정 문제로 인해 1957년 막을 내렸지만, 24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 간 다수의 교수와 학생은 1950년대 이후 뉴욕에서 전개된 국제적 아방가르드 예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선도해 나갔다. 이처럼 전체주의의 위협에 직면했던 시기에 전인교육을 꿈꾸고 민주적 시민으로 교육하고자 했던 BMC에서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교육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1세기 전 이미 예술을 기반으로 진보적인 교육을 실험했던 BMC의 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학교의 설립 배경과 바탕이 된 교육 철학, 실제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이루어진 통섭과 융합의 ‘학제 간 교육과정’을 세밀하게 들려줌으로써, 21세기 한국 사회가 오래된 미래 교육의 실험실이었던 BMC에서 어떤 교육적 자양분을 받아야 할지, 그로 인해 어떠한 교육적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예술을 통한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전인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한국 사회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교육 철학과 방법론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상상한 미래가 궁금하다!
― BMC 교육의 특징과 실험 교육을 이끈 주역들, 그리고 BMC의 유산


예술을 통한 통섭과 융합 교육을 실험했던 BMC에서는 구체적인 어떤 교육이 이루어졌을까? 먼저 BMC에서는 존 듀이의 교육 철학을 교육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바우하우스에서 건너온 요제프 알베르스이다. 라이스는 능동적 ‘지각’을 습득해 가는 과정을 연극 작업에 참여하는 것에 비유하며 책을 강독하는 것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교육 방식을 거부하고 관찰과 실험적 행동을 우선하는 교육 원리를 내세웠으며, 알베르스 또한 ‘보는 것’과 ‘관계의 존중’을 강조하며 음악, 연극, 드라마, 문학, 사진, 드로잉, 회화, 디자인을 포함한 광범위한 예술 교육을 진행했다.
BMC 교육과정의 특징 중 하나는 ‘실습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는 학교 공동체에 필요한 음식을 직접 제공하기 위해 농장을 운영하고, 건물을 짓거나 도로와 건물을 보수하며, 조경 작업뿐 아니라 무대 장치 설치 공사 등의 업무에 교수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교실 밖 학습 프로그램으로, 모든 유형의 일과 직업을 존중하고 근본적인 사회성을 키우는 교육과정이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학제 간 교육’으로, 당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건축학자 등이 이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특히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여름학교’에서는 로버트 머더웰, 제이컵 로런스, 빌렘 데 쿠닝, 레오 리오니, 발터 그로피우스 등이 참여해 풍성한 프로그램을 이어갔는데, 당시 건축가이자 공학자였던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는 여름학교의 건축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지오데식 돔’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272-273쪽 참조).
주목할 점은 BMC 교육의 목표가 뛰어난 예술가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BMC는 화가, 음악가, 시인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예술을 통한 융합 교육이 필수라고 여겼다. 존 케이지, 나타샤 골도프스키, 산티 샤빈스키, 머스 커닝햄 등 이곳을 거쳐 간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과 화가로 활발히 활동한 루스 아사와, 사이 트웜블리, 로버트 라우션버그 등 BMC가 배출한 학생들의 이후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현실적인 재정 문제로 인해 BMC의 교육 실험은 24년 만에 끝났지만,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몇몇 저명한 인물들이 미국의 미술과 문학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학생과 교수진은 미국 교육 체계의 길을 서서히 바꾸어 놓았다. 1세기가 지난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BMC의 교육 실험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이 상상한 오래된 미래는 오늘날 우리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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