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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 근대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始原)

Kautsky, Karl Joh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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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 근대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始原) / 카를 카우츠키 지음 ; 이승무 옮김
개인저자Kautsky, Karl Johann, 1854-1938
이승무, 역
발행사항서울 : 동연, 2020
형태사항385 p. ; 23 cm
원서명Thomas More und seine Utopie :mit einer historischen Einleitung
ISBN9788964475713
9788964475706 (세트)
일반주기 본서는 "Thomas More und seine Utopie : mit einer historischen Einleitung. 2nd ed. c1907."의 번역서임
주제명(개인명)More, Thomas,1478-1535
분류기호321.07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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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카를 카우츠키가 되살려낸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
카를 카우츠키의 ‘사회주의 역사 탐색’ 시리즈 전3권이 완간됐다. 시리즈의 첫 책이며 국역으로는 마지막으로 출간된 도서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는 《그리스도교의 기원》(2011, 동연), 《사회주의의 선구자들》(2018, 동연) 두 도서의 토대가 되는 책으로 1887년 첫 판본이 발행됐다.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 번역본은 국내에서 여러 판본으로 번역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제대로 된 전기나 평전 없이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어 있다. 헨리 8세의 스승이었고 대법관이나 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로마 교황으로부터 종교적 독립에 반대해 참수되었으며 그 후 가톨릭교의 성인으로 시성(1935년)된 인물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그 자신이 역사가 된 인물인 카를 카우츠키는 성실하고도 치밀한 문헌 탐색을 통해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을 재발견한다.
카를 카우츠키는 34세에 이 책을 출간했다. 1883년 <새시대>(Die Neue Zeit)라는 잡지를 발행하며 사회주의의 역사를 근원에서 탐색하는 연구를 과제로 삼았던 청년 카우츠키는 토...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카를 카우츠키가 되살려낸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
카를 카우츠키의 ‘사회주의 역사 탐색’ 시리즈 전3권이 완간됐다. 시리즈의 첫 책이며 국역으로는 마지막으로 출간된 도서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는 《그리스도교의 기원》(2011, 동연), 《사회주의의 선구자들》(2018, 동연) 두 도서의 토대가 되는 책으로 1887년 첫 판본이 발행됐다.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 번역본은 국내에서 여러 판본으로 번역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제대로 된 전기나 평전 없이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어 있다. 헨리 8세의 스승이었고 대법관이나 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로마 교황으로부터 종교적 독립에 반대해 참수되었으며 그 후 가톨릭교의 성인으로 시성(1935년)된 인물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그 자신이 역사가 된 인물인 카를 카우츠키는 성실하고도 치밀한 문헌 탐색을 통해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을 재발견한다.
카를 카우츠키는 34세에 이 책을 출간했다. 1883년 <새시대>(Die Neue Zeit)라는 잡지를 발행하며 사회주의의 역사를 근원에서 탐색하는 연구를 과제로 삼았던 청년 카우츠키는 토마스 모어와 토마스 뮌쩌 두 사람에게서 사회주의의 원류를 발견했다. 카우츠키는 특히 토마스 모어에게서 사회주의의 이상이 내재화된 것을 발견하고 영국 런던에서 지내며(1885~1890년) 토마스 모어의 발자취를 무수히 되밟고 고증을 거쳐 토마스 모어 평전인 이 책을 펴냈다.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대표 이론가가 바라본 토마스 모어는 단지 헨리 8세의 개혁(국교회 설립)을 반대했다는 단편적인 이유로 처형된 인물이 아니다. 카우츠키는 모어 당시의 사회 체제의 부조리와 영국의 경제 상황을 다각도로 재구성하여 자료의 부족으로, 때로는 과도한 찬양으로 얼룩진 토마스 모어의 진면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치열한 지식인 토마스 모어의 삶은 레닌으로부터 ‘배신자(개량주의자) 카우츠키’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을 비판했던 학자 카를 카우츠키의 삶과 겹치며 130여 년을 건너서야 우리 글로 번역된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근대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始原)을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려낸 이 책은 《유토피아》를 읽었던 독자들에게, 또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카를 카우츠키가 제시한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궤적이 현시대에도 이어지는 흐름을 읽어내고 있는 이들에게 사회주의의 발자취를 되짚어 새로운 전망을 세울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된다.

유토피아에 대한 흔한 오해

유토피아(Utopia)를 흔히 ‘어디에도 없는 곳’, 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오히려 ‘아무 것도 없는 곳’, 황무지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잿더미 위에 세운 새로운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카우츠키의 견해에 따르자면, ‘유토피아’는 처음에 황량하고 무가치한 땅을 지칭하던 단어였다가 나중에 그 위에 이상적인 나라를 세운 뒤 그 나라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즉, 유토피아는 궁극적인 목표로서 낙원을 뜻하는 게 아니라 황무지에 낙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내포된 의미다.
카우츠키는 이 책에서 모어의 삶을 당시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모든 자료를 분석하고 15세기 영국의 역사적 상황을 대입하여 한 사람이 허황된 꿈으로, 재미있는 소설로 치부되었던 《유토피아》에 대한 오해를 허문다. 모어는 한 나라의 재상으로 국왕 바로 아래서 국정을 운영했다. 그렇기에 당시 영국 사회의 모순과 권력 체제의 부조리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모어 시대의 영국은 양모 무역 발전으로 무수한 농지가 목초지로 뒤엎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농민들은 농지를 잃고 삶의 토대가 허물어져갔다. 농민들이 농노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게 된 당시 실정을 토마스 모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양’이라는 소름끼치는 은유의 말로 해체해낸다. 이런 정곡을 찌르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기에 《유토피아》는 출간되자마자, 라틴어로 쓰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재판을 거듭하여 발간되었고 당시 런던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토마스 모어는 무엇보다도 애민(愛民) 정신이 강한 지식인이었고, 불합리한 권력과 종교의 기득권 체제를 비판하는 인문주의자였다. 모어는 당시 런던에서 우리 시대로 치면 ‘민변’에 해당할 만한 변호사로 활동했다. 시민들에게 변호사 비용을 최소로 받기도 했고 시민들이 당하는 불합리를 없애려고 무던히 애썼다. 또한 가정에서 식솔들을 대하는 태도와 친구들과의 교우 등 카우츠키가 고증을 거쳐 묘사하는 모어는 성현의 삶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카우츠키는 이 책에서 모어가 죽음으로 지켜낸 사상만이 아니라 삶으로 이뤄낸 철학까지도 재생한다. 저자가 되살려낸 모어는 가히 유토피아에서 살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아도 족하다. 모어의 인간 됨됨이와 그가 꾸려낸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유토피아》는 가히 모어가 온 삶으로 써내려간 삶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모어의 삶과 그의 작품을 연계하며 구성한 이런 점이 기존에 《유토피아》를 다뤘던 도서들과 이 책의 차별되는 지점이다. 카우츠키는 모어라는 인물과 그가 발 딛고 살았던 시대 배경을 역사적 추적을 통한 개연성 확보로 유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회주의 사상의 뿌리 찾기’라는 필요에 아전인수격으로 토마스 모어를 끌어들였다고 혹자들은 비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가 카우츠키의 냉철하고 논리적이며 근거가 분명한 분석 앞에서 이런 비판은 힘을 잃는다. 카우츠키가 사회주의의 시원으로 여겼던 토마스 모어와 그의 ‘유토피아’는 실체의 힘을 얻는다.

사회주의 사상의 시원에서 다시 생각하는 우리의 공동체

토마스 모어가 그려낸 ‘유토피아’라는 가상 국가는 이 시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현대성을 지녔다. 아니 오히려 미래적이라 할 부분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물론 봉건국가의 사고 체계가 명맥을 유지하던 15세기의 역사적 한계를 고려해야 할 지점도 없지 않다. 카우츠키는 생산의 물적 토대가 구비되지 않았던 15세기 상황에서 모어가 그려낸 이상 사회의 구조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한다. 이 책의 미덕은 선행자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근대 사회주의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과 방법을 비교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카우츠키는 유토피아의 법과 질서, 결혼 제도, 가족 구성과 여성에 대한 우대, 도시와 농촌의 자급 체계, 범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종교관, 미래적일 정도의 열린 교육관, 철학 등에 방점을 찍어 근대 사회주의가 도달해야 할 지평을 발견한다.
가톨릭에서 시성된 모어는 종교에 관용적인 사회를 이상 사회의 모델로 제시한다. 그가 그려낸 유토피아의 종교에 대해 본문 한 구절을 보자. “그들 가운데 극히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모두는 신적 존재의 숭배에서는 합의에 도달하며, 그에 따라 성당 안에서는 모든 종파가 일치를 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종파에 독특한 예배 관습을 자기 집 안에서 이행합니다. 공적인 예배는 어떤 점에서도 개별 예배와 상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신앙에 맞게 신성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성당 안에는 어떠한 신의 그림도 없습니다.”(본문 360-361쪽)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카우츠키의 표현을 빌리면 “모어는 18세기의 관용정신에 가까웠는가 하면, 또한 그의 이상적인 교회 조직을 가지고서 종교개혁을 선취했다. 아니 ‘가톨릭 순교자’인 그는 다분히 이 종교개혁을 넘어섰다.”
이렇듯 종교 간 분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모어가 그려낸 이상 국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을 그려준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었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국가들의 사회공동체 실험이나 작은 공동체들의 지역공동체 시도에 모어의 ‘유토피아’를 대입하더라도 적잖은 부분을 맞대어 비교해볼 수 있다. 그만큼 모어의 유토피아는 현대적이고 카우츠키가 해설한 유토피아는 실체를 획득했다.
카를 카우츠키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 근대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독일사회민주당의 하이델베르크 강령을 공동 기초했으며 레닌의 강력한 반대자로 멘셰비키파에 동조하는 입장에 선 인물이다.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에 이른다’는 그의 사상은 레닌에게서 ‘개량주의’로 비판을 받았지만 현대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의 원류로 이해될 만큼 그 위상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카우츠키는 한국 사회의 1970~1990년대 노동운동가들의 연구에서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1990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함께 소멸하는 듯 보였지만 사회주의의 물꼬가 완전히 막힌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뒷모습을 목도하며 여러 형태의 공동체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문주의의 긴 역사에서 카우츠키가 근대 사회주의의 원천으로 여겼던 토마스 모어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가 그려낸 유토피아는 우리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거울로 사용하기에도 넘치는 샘물을 공급하는 수원으로 삼을 만하다. 유토피아주의, 곧 이상주의는 결코 공허한 상상만이 아니고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유럽에서 중세의 봉건제가 해체되고 상품경제가 시작되는 큰 흐름을 일반 경제사적 과정으로 서술한 것이다. 카우츠키의 설명은 대단히 쉽고 명확하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카우츠키가 중시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사상과 문화 측면의 발전을 서술할 때 기초가 된다. 카우츠키는 이런 역사관을 기조로 삼아 모어 시대의 가톨릭교와 인문주의 그리고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벌어진 종교개혁이 역사적으로 어떤 흐름에 있었는지 맥을 짚어가며 설명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교 신학과 교회사에서 바라보는 것과 차이가 많다. 특히 로만계 나라들의 지식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인문주의자들은 독일의 종교개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개혁을 문화적으로 낙후한 곳에서 벌어진 민중 봉기로 폄하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유럽의 종교적 ? 정신적 판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 준다. 특히 종교 관련 서술을 할 때 카우츠키는 상당히 신랄하다. 성직자들의 행동이 물질적 이해관계를 철저히 따른 것으로 보고 이를 직설적으로 설명해 주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2부에서는 토마스 모어라는 인물에 대해 다룬다.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인문주의자이고 학자이며, 반골 기질을 지닌 개혁파 정치인이었다.
구체적으로 1500년대 초에 영국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토마스 모어가 인문주의자로서, 가톨릭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영국의 대외관계와 재정을 담당한 현실정치인으로서 취한 태도를 시대 배경과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토마스 모어가 영국 런던의 대외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취했던 태도의 개연성을 추적한다.
카우츠키는 모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헨리 8세와 까따리나 왕비의 이혼 문제를 왕실 안에서 발생한 치정(癡情) 문제나 가톨릭 교리에 대한 신앙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면밀한 정황을 근거로 당시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서 벌어졌던 유럽 정치무대에서의 패권 다툼 그리고 영국 내에서 유럽의 평화와 통합을 원하는 상인 세력과 절대군주를 중심으로 한 패권 세력 간의 투쟁, 교회 재산을 탐내는 절대왕권과 농촌 민중의 버팀목이던 수도원 재산을 지켜 민중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막으려는 모어의 사회주의적 지향 간의 대립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해낸다.
토마스 모어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Reformation)과 농민전쟁 시기에 살았으며, 다른 인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개혁운동에 동조하지 않았다. 인문주의자들은 신앙적으로 훨씬 더 인간중심적이었고 자유주의적이었으며, 학문 수준이 더 높았고 교황의 절대성에 대해서도 더욱 비판적이었다. 신앙적으로 더 진보적이었던 인문주의자들은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 로만계 국가들에서 활동하면서 교황을 자신들의 인문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에 비로만계 국가들은 교황 체제하에서 심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가톨릭 세력들의 인문주의는 개혁운동을 거친 뒤에 예수회의 교리와 활동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가톨릭의 교리를 목숨을 바쳐 고수한 가톨릭 순교자로 시성되었다. 하지만 그의 종교관은 시대를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이상적 사회질서 속에서 그가 구현한 종교는 가톨릭교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 관용과 다양성 인정을 핵심으로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예배당에서 행하는 공적 예배는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만을 가지고 거행해야 하며, 각자 상상하는 신의 모습에 따른 신앙 행위는 개인의 집에서 거행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대사회의 종교관으로 비춰 보더라도 획기적이다.
카우츠키는 종교에 대하여 다른 어떤 사회주의자보다도 많은 글을 남겼다. 이는 과거의 사회사상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여 현대의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을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어가 루터에게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퍼부었는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직설적인 성격과 조롱어린 유머를 카우츠키는 중세 가톨릭교의 원시 공산주의적인 소박한 민중적 건강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관습과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 신랄한 언어, 전복적 성격을 가진 유머, 성직자 계층에 대한 조롱의 언사는 상당히 인상 깊다. 카우츠키가 유물사관에 따라 역사를 서술할 때도 물질적 탐욕을 채우는 행태들을 직설적으로 명확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모어와 비슷한 에토스를 보여준다.
책의 제3부에서 카우츠키는 《유토피아》에 기술된 이상적 공화국 질서를 주제별로 소개하고 자신의 비판과 논평을 덧붙인다. 그 주제는 생산양식 내지 경제 형태, 정치 제도, 가족 ? 혼인 ? 인구 문제, 학문 ? 철학 ? 종교 문제 등으로 장별로 나뉘었다. 이러한 서술로 《유토피아》를 읽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에서의 삶을 뚜렷하게 그려낼 수 있다. 카우츠키는 모어의 《유토피아》를 되살려 분석하며 자신이 품은 사회주의적 견해의 중요 내용들을 피력한다.
이번 한글판에 추가된 부록 <사회주의 역사에서의 유토피아의 위치>는 1895년에 나온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 제1권 제2부 〈토마스 모어에서부터 프랑스 혁명 전야까지〉의 카우츠키가 맡은 제1장 〈토마스 모어〉의 제5절을 옮긴 것으로서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의 역사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갖는 중요성을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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