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당시(唐詩)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애송되어 온 고전시가이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초·중등 교육 과정만 마쳐도 300수 정도는 줄줄 외울 정도로 당시가 그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녹아있다. 옛날 과거시험에서는 시 짓는 능력을 평가하여 고급관리를 선발하였는데, 이때 수험생들은 좋은 시를 짓기 위하여 당시를 모델로 삼기도하였다. 이렇듯 당시가 서민들로부터 사회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시가 감정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인간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웅변하듯이 인간은 언어로 소통한다. 시는 궁극적으로 언어의 예술이고 예술은 탄복할 만한 기량을 통해서 다른 세계(감응)를 창조한다. 탄복은 창조된 세계에의 동참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그 세계에서는 '천 냥 빚'을 탕감해주는 결단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여포가 원문 밖의 방천화극을 쏴 맞추는 예술을 연출하자 유비와 기령이 전투를 포기하고 군대를 철수한 사건은 이를 잘 말해준다.

당시는 당나라라는 대제국이 외부의 문물과 사상들을 수용하면서 형성된 다양한 감응들을 『시경』 이후 발전해 온 정형시의 형식을 빌려 창작된 시들이다. 당시는 양적으로도 실로 방대해서 『전당시(全庸詩)』(1746)에 실린 작품만 해도 시인 2,200여 명에 각종 시가 48,900여 수에 달한다. 나중에 이들 중에서 정수를 뽑아 편찬한 당시선집이 저 유명한 『당시 3백수』이다. 3백 수도 기실 적지 않은 양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 정도를 다시 선별하여 『당시선(唐詩選)』이란 이름으로 대여섯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흔히 당시하면 이백과 두보를 떠올린다. 이들은 각각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이란 별명에 걸맞게 훌륭한 시를 창작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왕유·맹호연·왕지환·이하·두목 등 이들 못지않게 주옥 같은 시를 쓴 시인들이 즐비하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잘 알려진 몇몇 스타에 집중적으로 열광하는 경향이 있어서 정작 음미해야 할 좋은 작품을 홀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 아름다운 경관에 감동하여 시 한 수를 지으려 했으나, 누각에 걸려있는 최호의 시를 보고 여기서 이보다 더 훌륭한 시는 나올 수 없다고 말하고는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는 유명한 고사가 있지만 우리에게 최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당시를 읽을 때에는 스타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시인들의 시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레코드 앨범에 이름없이 실려 있던 곡이 어느 날 영화나 CF에 삽입되면서 인기곡으로 재평가되는 것처럼 말이다.

시가 창조한 세계(또는 감응)는 나만의 세계일 수도 있고 타자를 아우른 세계일 수도 있다. 당시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주요 이유는 시인들이 자신들의 고뇌를 개인적인 영혼에만 집중시키지 않고 타자 및 자연과의 세계 속에서 절제된 형식으로 녹여냈다는 데 있다. 전자를 소아(小我)의 세계라면 후자는 대아(大我)라 할 수 있는데 당시는 전반적으로 이 소아와 대아가 매우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시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는 당시의 형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므로 시를 읽을 때에는 이 부분을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한다. 시니피에(기의)는 시니피앙(기표)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시를 읽기 전에 시의 형식에 대한 간단한 지식에 먼저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당시의 장르는 크게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고시와 악부, 그리고 형식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율시와 절구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대아의 의미가 느껴지는 시는 전자에, 소아는 후자에서 각각 많이 발견된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가 전자에 비하여 시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근체시로 불리는 율시와 절구는 엄격한 형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칫 가치가 저평가될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시의 형식이 강구하는 대장(對仗)·평측(平仄)·압운(押韻) 등의 규칙은 균형 잡힌 음악성을 길러줌으로써 대아를 위한 수양의 방도가 되기도 한다. 시가 온유돈후한 인성을 배양한다는 중국의 전통적인 믿음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고, 과거시험에서 율시를 주요 과제로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시선』은 현재 대여섯 종류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는데, 나름대로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번역과 주해의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병한과 이영주가 함께 역해한 『당시선』(서울대학교출판부 발행, 1998)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