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윌리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와 경쟁 관계였던 동시대 작가, 벤 존슨은 그를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세대'를 위한 작가라고 불렀다. 그 후 셰익스피어 작품의 보편적 가치와 의미는 이제 차라리 상식의 차원에 속한다. 거의 매년 영화화된 그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무대화된 셰익스피어 연극을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위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이란 기실 당대 영국 역사와 문화에 철저히 뿌리박은 현실주의적 성취를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예컨대 1576년 처음 문을 열었던 상업 대중극장의 탄생이라는 극장사적 사실에서부터, 초기 근대 사회 형성기의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변화, 16세기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던 종교개혁의 문맥, 새로운 기술과 과학적 발견 등을 고려하지 않고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보편성이란 그가 살았던 특별한 역사적 정황이나 당대의 독특한 예술적 관습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37편 가량의 희곡 작품과 154편의 소네트, 그리고 몇 편의 이야기 시를 남겼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햄릿(Hamlet)』은 셰익스피어의 기량이 원숙기에 들어선 1601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덴마크 엘시노어 궁전을 주무대로 하여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를 시도하는 햄릿 왕자를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모두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의 원고가 남아 있지 않고, 내용에 차이가 많이 나는 여러 개의 판본이 공존하는 까닭에 어떤 텍스트를 셰익스피어의 원본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많다. 이처럼 상이한 판본에 기초하여 현대의 학자들이 편집 종합한 형태의 텍스트가 다양하게 출간되었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햄릿』이다. 흔히 극장에서 만나게 되는 『햄릿』 역시 이 혼합 텍스트를 상연시간에 맞추어 재편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햄릿』이 지금껏 수많은 예술가와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던 이유를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쉽게 행동하지 못하고 심사숙고를 거듭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을 두고 흔히 햄릿형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햄릿은 아버지의 살해범을 징벌해야 하는 도덕적 책무를 앞에 두고 고민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복수 지연은 결코 '우유부단한' 햄릿의 성격 탓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사적인 복수와 근대적 법률 지배의 중간에서, 복수를 통한 정의실현과 기독교적 은총 및 용서 사이에서, 사적인 욕망과 공적인 임무 사이에서 고뇌와 성찰을 거듭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으로 햄릿을 고려해야만 설명된다. 실제로 『햄릿』에서는 햄릿과 비슷한 처지에서 복수를 시도하는 인물이 두 명 더 있다. 비슷한 복수를 시도하는 포틴브라스 왕자와 레어티즈를 햄릿과 비교해보면, 셰익스피어가 제기하는 문제가 단순히 인물의 '성격' 차원을 넘어서는 역사적·종교적·정치적 지평의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물론 『햄릿』은 역사와 공간을 가로질러 수많은 독자와 관객에게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예컨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유령'은 현재가 과거에 붙들려 있는 세상,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은유이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부유하는 유령은 우리에게 '존재' 자체를 발본적으로 문제 삼도록 요구한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아들의 존재를 규정하고, 아버지의 은원관계는 아들의 현실이 되는 상황, 그것은 역사적 상황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햄릿』은 아버지에 대해, 과거에 대해 작별을 고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를 자신의 미래로 만들 수 있고 자신을 자기의 주인으로 만들어가는 인간(역)사에 대한 비유가 된다. 이외에도 정의와 처벌, 광기와 이성, 욕망과 존재, 재현(기능성)과 예술이라는 중요한 근대적 쟁점이 파노라마처럼 제시되고 있다.

국내 번역본 중에서는 다소 오래되긴 했지만 최재서 역본(연희춘추사, 1954)이 가장 훌륭하다. 그 외에도 약간의 유보와 함께 김재남 역본(하서출판사, 1996)과 신정옥 역본(전예원, 1989)을 권한다.